[맨하탄] 우디 알렌 영화 중 가장 아름다운.

 
 뉴욕 맨하탄에 사는 아이삭은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끼는 TV 쇼 작가다. 그는 자신을 버리고 레즈비언으로서의 삶을 선택한 아내가 쓰려는 자서전에 골머리를 썩히며 스무살 넘게 차이나는 17세 여고생 트레이시와 부담스러운 연인관계를 맺고 있다. 그의 절친한 친구인 예일은 자신의 아내를 두고 정서가 불안정한 여성 메리와 바람을 핀다. 예일이 메리와 헤어지게 되면서 아이삭은 트레이시와 메리 사이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

 아마 가장 우디 알렌스러운 작품-초중기 한정-이라면 [맨하탄]이 아닐까 싶어요. 뉴욕에 대한 사랑, 현학적인 농담과 엉망진창인 인간관계. 그리고 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채감과 실패도. 또 [맨하탄]은 가장 아름다운 우디 알렌의 영화이기도 하지요. 흑백필름은 맨하탄의 안개의 어스름한 농담을 담아내고 영감님과 영감님이 연인들은 그 사이를 걸어가는데...캬.

 처음 봤을 때는 오히려 그 진가를 몰랐던 작품이에요. 왜 이런 어설픈 자기복제를 내놓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제 마음 속 다시 보지 않아도 될 작품들 카테고리에 던져놓았었는데. 부산에서 다시 [맨하탄]을 만나고 감상은 완전히 달라졌지요. [맨하탄]은 결코 단순한 자기복제가 아니라 자신을 깎고 갈고 단련해서 만들어낸 우디 알렌의 결정체에 가깝다고요.

 "너는 욥의 고난에 대한 신의 대답이야. 넌 욥과 신의 다툼을 단박에 끝낼 수 있지. 신이 이렇게 말하는 거야. '그래, 내가 온갖 좆같고 개같고 쌍스러운 걸 만든 장본인이지. 하지만 난 김꽃비트레이시도 만들었잖아?' 그러면 욥은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지. '좋아, 당신이 이겼어요." 네. [맨하탄]은 바로 이러한, 욥과 같이 믿음을 갖지 못한 한 남자가 혹시 자신의 불신 너머에 무언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깨닫게 되는 하나의 연애적-우디 알렌적 고행기랍니다. 웃음과 행복으로 가득한 고행이지만요.


덧//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가 나오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덧2//
처음에 이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은 이유는 트레이시 역을 맡은 배우가 예쁘지않아서 일지도(...)

덧3//
해피 추석! 달구경 잘 하세요 :)

by dcdc | 2009/10/03 17:52 | 내가 사랑한 우디 앨런 | 트랙백 | 덧글(8)

[수혹성 연대기] 빛으로 충만한 SF만화.

 
 해수면의 상승으로 많은 곳이 물에 잠기고, 달에 사람이 살며, 적도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면 우주에 나갈 수 있는 가까운 미래의 지구.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이 그려내는 사랑스러운 일상의 모습은 변함없이 반복됩니다. 물의 혹성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미래의 오늘을 살고 있는 이들이보내는 따스한 온기를 지금 느껴보지 않으시겠습니까?-[수혹성 연대기] 뒷표지에서.

 블로그 포스팅할 의욕을 오랜만에 가져다 준 만화, 동일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SF 옴니버스 [수혹성 연대기]입니다. 이렇게 꿈과 희망, 사랑으로 가득 찬 만화는 너무 오랜만인지라 반갑기그지 없었답니다. SF적 상상력이나 스케일의 장대함 이런 것들과는 거리가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수혹성 연대기]는 빛을 발해요.

 2권까지 정발 된 내용 중 3편이나 자리를 차지하는 '우주를 보고 걷자' 에피소드의 내용이나 제목처럼 [수혹성 연대기]가 다루는 이야기는 언제나 우주를 올려다보며 옆에 서있는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삶의 여로를 걸어가는 비일상적 일상의 연대기입니다. 시간적으로는 먼 미래의 언젠가를 다루고 있지만 공간적으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어딘가의 삶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아요.

 멋진 프로포즈를 고민하는 연인, 천체관측으로 가까워진 친구, 장래를 고민하는 소녀...이런 이야기들은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하더라도 나올 법한 이야기겠지요. (물론 '8일 간의 세계일주'같은 작품은 SF적 상상력이 필수적이지만 주된 형식은 아니니까 패스!) 그러니 [수혹성 연대기]가 갖는 매력은 그 빛으로 충만함, 우주와 나와 같이 걸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가득한 사랑에 있는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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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크게 거슬리진 않았지만, 남성환타지에 치우친 듯한 느낌이 있어요. 노출도 많고 하하(...) 생각해보니 작품 설명을 거의 안했네...근데 옴니버스에다 확 튀는 이야기가 없어서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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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출간도 되었습니다만 한국판 표지는 그림체 소개가 안 될 것 같아서 일본판 이미지를 올립니다!

by dcdc | 2009/10/02 01:37 | 내가 사랑한 B급-만화 | 트랙백 | 덧글(10)

[애니 홀] anything else?

 
 뉴욕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신경과민증의 앨비는 가수 지망생인 애니를 보고 한눈에 반하고, 애니 또한 앨비에게 관심을 가진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점점 다가가고 머지않아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완벽하기만 하던 서로에게서 단점을 보게 되고,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한다. 50회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수상에 빛나는 우디 알렌 대표작 중의 대표작. 우디 알렌 스스로 이 작품을 전환점이라고 불렀다.-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추가.

 제가 애니 홀이라고 부르는 여자가 있어요. 물론 본인 앞에서는 아니고, 술자리에서 그 친구 이야기 할 때 본명으로 부르기 싫어서 애니 홀이라고 지칭하지요. 그 친구를 애니 홀이라고 부르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어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뻔한 답들의 리스트가 그 이유고요. 제 인생에서 참 낯부끄러운 장면의 꽤나 많은 원인이 되었던 친구라는 것도 물론 포함된답니다. 다만 그 친구는 절 좋아했던 적이 없다는 것은 그 리스트의 예외가 될 부분이겠지요. 아휴.

 우디 알렌을 좋아한다, 라고 말하면 "나 [애니 홀] 봤어요. 좋은 작품이에요."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면 전 꼭 "그렇죠. 저는 그 작품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요."라고 대답해요. 맞아요. 저는 우디 알렌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뮤즈에게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고백하기 위한 작품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저랑 하는 짓이 너무 똑같아서 짜증나거든요.

 저는 우디 알렌이 사랑에 빠졌던 여성들도 싫어해요. 다이앤 키튼, 미아 패로우, 스칼렛 요한슨...우디 알렌은 그녀들을 신격화하며-거기다 영감님은 자기가 신격화하고 있다는 걸 똑똑히 알고 있죠- 그녀들이 완벽한 그의 짝이 아님에도 세상의 모든 것인 듯 마냥 빠져들지요-물론 영감님은 완벽한 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알아요-. 보면 볼 수록 기시감이 든다니까요. 가장 한심한 날 모든 일을 망치고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볼 때 같은 기시감이요.

 얼마 전 영화처럼 애니 홀을 만났어요-여기서 영화같다는 수식은 운명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애니 홀] 결말과 비슷하다는 의미랍니다 하하-. 꿈을 꿨거든요. 전 지금 나이 그대로 고등학교에 돌아갔고, 모교는 남녀공학으로 바뀌었고, 제가 갖지 못했던-놓쳐버렸던 수많은 것들로 가득했어요. 제 옆자리에는 애니 홀이 있었고, 망측하게도 제가 그 친구 볼을 쓰다듬었는데 분필가루가 묻었던 그런 꿈이었어요. 그날 학교 가는 길에 그 친구한테 연락을 했죠. 만나자고.

 얼마나 멋진 여자였는지, 얼마나 재밌는 사람이었는지. 뭐 시간이 흐르고 보니 정말이지 내가 무슨 깡으로 이 여자에게 덤벼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저와 거리가 있다는 걸 느끼기도 했지요. 이제는 저도 [애니씽 엘스]의 도벨처럼 좀 여유가 생긴 것일 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니 아주 잠시만은 [애니 홀]이 재밌는 영화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달걀이 필요해질 그 날까지는요. 라디다, 라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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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아서 블로그 쉬었습니다. 추석 연휴 뒤부터는 바빠서 쉴 것 같아요 :)

덧2//
전에 쓴 [애니씽 엘스] 첫번째.
전에 쓴 [애니씽 엘스] 두번째.

by dcdc | 2009/10/01 22:40 | 내가 사랑한 우디 앨런 | 트랙백 | 덧글(5)

[Aces high] 현학적인 헛소리, 적정량의 변태끼.

 
 앗쌀란과 대치중인 말라쿠스탄 왕국, 용병 파일럿으로만 구성된 Area69에 취재를 하러 온 권의진. 그는 그 곳에서 같은 한국인 용병 파일럿 최장집-통칭 J.J.를 만난다. 그가 속한 베른슈타인 편대는 별 상또라이들만 모아놓은 미친 부대로서, 아직 상대 국가에 공군이 창설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습은커녕 시덥잖은 농담과 팬티스타킹에 대한 편집증으로 매일매일을 낭비하고만 있을 뿐이다. 어떻게든 기사거리 하나 건져가야하는 권의진과 베른슈타인 편대의 12편짜리 병영일기.

 다음에서 연재되었던 [Aces high]는 현학적인 헛소리와 적정량의 변태끼로 무장한 웹툰입니다. 아쉽게도 12부 연재로 완결이 나고 말아 시즌2 연재를 바라는 덧글이 아직까지도 달리고 있는 중인데요, 큰 붐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확실한 기본기로 매니아층을 형성한 덕분일 것입니다. 저 역시도 연재 도중 언젠가는 리뷰도 쓰고 홍보도 해야지 하고 있던 차였으나, 정신차려보니 완결이 되었더군요...OTL

 [area 88]에 대한 노골적인 오마쥬가 물론 가장 중요한 부분이겠지만, [Aces high]의 '아는 척'한다 싶은 개그는 곳곳에서 빛을 발합니다. 사막에 추락한 J.J.가 가방 속에서 책을 뒤지지만 생존교본이 아닌 [도구적 이성비판]이 들어있다거나, 어린왕자를 만나 양 그림에 대한 신경질을 벌인다거나, 칼 맑스의 [경제학 철학 수고] 같은 인문학 고전들의 일부분을 발췌해서 타이틀을 장식한다거나. 갖은 현학적인 이야기들로 가증스럽게 일장연설을 하는 J.J.의 모습이야말로 [Aces high]의 백미입니다.

 또한 부담되지 않을만큼 적절한 변태끼도 작품의 매력입니다. (성희롱 개그가 거슬리기는 했습니다만 으음;;; 개그만화의 숙명이라고 치지요 ㅠㅠ) 후미 날개의 팬티스타킹을 신은 여자의 다리만을 그려놓은 J.J.의 비행기가 가장 이 작품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소개하면 소개할 수록 이 만화의 재미난 매력을 제가 다 스포일러하는 기분이라 더 길게 이야기하기는 그렇습니다만, 어쨌든 제가 올려놓은 짤 정도면 충분히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


덧//
그러니까 시즌2!!

덧2//
[Aces high] 1화 보러가기.

by dcdc | 2009/09/12 18:07 | 내가 사랑한 B급-만화 | 트랙백 | 덧글(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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