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1월 14일
<왕의 남자> 왕이 아닌, 연산을 위한 영화.

왕의 남자: 과거를 바라보는 척 현재를 비웃다
(lyh1999님의 글. 언제나 그러시듯이 너무 잘 쓰셨다. 한번 꼭 봐보시길!)
<왕의 남자>의 주인공은 왕의 남자가 아닙니다. <왕의 남자>의 사건의 중심, 이야기의 흐름, 모든 인물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연산, 왕입니다.
연산이라는 임금은 왕조의 불행만을 한군데로 모아놓은 듯한 인물입니다. 그의 어머니 윤비는 그의 조모 인수대비와의 불화와 선왕의 첩들의 이간질로 죽음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계모인 정현왕후를 친모로 알고 자라게 되었었지요. -그러고보니 영화에선 이 부분이 조명이 되질 않았군요.-그리고 그의 아버지인 성종은 조선역사에 있어서 명군으로 이름을 남겨, 연산은 언제나 선왕과의 비교 당하는 입장에 설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보통 일가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더라면 그의 저런 가족사적 불행은 속앓이밖에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왕이었고, 온갖 정략적인 밀고 당기기가 그치질 않는 궁궐에서밖에 살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불행은 어떤 이들에겐 정적을 제거할 최고의 무기였을 터이며 그 불행의 원인이었던 이들, 즉 윤비를 폐비로 만들고 사약을 내린 자들에게 연산은 결코 섬길 수 없는 임금이었을 것입니다.
영화는 이런 연산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장생과 공길이 얼핏 주인공으로 비춰질지 모르나, 첫장면의 공길의 살인, 장생과의 도주, 뒷부분에 어떤 내용도 안나옵니다. 그리고 광대를 궁으로 끌어들인 신하 처선 역시 장생과 공길의 솜씨가 탁월하거나 그들의 가면극의 내용에 동조했기에가 아니라, 그저 임금을 위해 데려온 것이었을 뿐입니다. 녹수 역시 공길에게 질투하는 모습을 보일 뿐, 장생에게는 눈도 돌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질투는 왕의 공길에 대한 집착에서 온 것에 대한 반발일 뿐이죠. 몇몇 신하들이 공길을 살해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그들이 '광대들을 죽이면 왕의 광태가 사라질 것이다'라고 생각했다고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인물뿐만 아니라 이야기 역시 연산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위에서 적어놓았듯이 장생과 공길의 도주는 정말, '쓸모없는 곁가지'일 뿐이고 육갑이의 죽음 역시 전혀 슬프지도 않은 생뚱맞은 안주거리입니다. 장생과 공길이 하는 놀음은 그들 자신의 혼에서 타오르는 예술적 행위가 아닙니다. -마지막 장면은 제외됩니다만- 중신들을 가지고 노는 것, 왕의 어머니-윤비-의 죽음의 진실에 대해 폭로하는 것, 그 둘 모두 임금에게 충의를 다바치는 처선이 가져다 준 아이디어 아니었습니까? 왕에게 법도를 따지지만 그들 역시 법도를 지키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사욕을 위해만 사용하는 중신들에 대한 비난, 왕에게 광증을 불러일으키게 만든 원초적 원인인 윤비의 죽음의 진실 모두 광대들의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왕을 위로하기 위한 놀음이지, 광대들 자신의 놀음이 아니죠. 장생과 공길은 처선의 꼭두각시가 되어 왕의 비극을 조명하고 동정하는 놀음을 하였을 뿐입니다. 그들의 광대놀음은 풍자가 아닙니다. 풍자라기엔 너무나 내용이 빈약한 풍자죠.
인물들과 이야기는 오로지 연산이라는 임금이 어째서 비극을 가지고 있는지, 그가 가지고자 열망했던 그 비극의 해방구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만 초점이 잡혀있는 것입니다. 위에 영화가 연산의 비극을 말하고 있다는 부분까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비극에서 연산군이 벗어날, 구원의 방법이 무엇이었을까요?
장생과 공길의 놀음을 보기 전까지 연산의 구원의 방법은, 도피의 방법은 바로 녹수였습니다. 공길을 밤마다 불러 놀기 전의 연산은 녹수와 술을 마시며, 방탕하게 지내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르나 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피곤한 듯 눕는 연산에게 녹수가 '애기 젖줄까?'하면서 다정하게 말하는 모습을 보면 연산은 녹수에게서 모성의 이미지를 갈구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공길에게도 버림 받은 후의 연산이 녹수의 치마속으로 들어가려는 장면을 통해 더 강조됩니다. 치마 속,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회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죠. 연산은 그렇게 자신이 소유하지 못했던 '어머니'란 존재를 녹수에게서 찾았습니다.
그러다 연산은 호기심 삼아 놀이패의 공길을 방으로 불러들입니다. 밀실에서 단 둘이 처음 만난 연산이 공길에게 바라는 것은 별 것 아닙니다. '놀자.' 처음의 연산은 공길을 그저 주변에 우연히 떨어져있는 공깃돌 정도의 장난감으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매우 공을 들여서, 세심하게 만들었음이 분명한- 공길에게 보여주는 종이인형극, 자신의 슬픔의 원인에 대한 그의 호소에 공길은 그를 위해 눈물을 흘려줍니다. 그리고 그 눈물에서 연산의 구원은 시작됩니다.
연산은 밤마다 공길을 방으로 끌어들여 자신과 놀아주기를 바랍니다. 이제까지 공길이 몸을 바쳤어야했던 양반 고위 대관들과는 달리, 연산이 바라는 것은 육체적인 위안이 아니었습니다. 영화내에서 연산이 공길을 육체적으로 탐하는 듯한 장면은 단 한 컷도 나오지 않지요. -삭제된 장면이 있다는데 그런 장면들은 당연히 논외로 쳐야겠죠?- 연산이 바라던 구원은 거짓모성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고, 자신과 함께 웃어줄 자신과 대등한 상대였을 뿐이니까요. 물론 공길이 패왕별희에다 연산의 이야기를 각색한 듯한 극에서 윤비의 역을 하고 연산이 착란을 일으켜 윤비를 괴롭혔던 후궁들을 칼로 난자를 합니다만, 그 이후 연산이 공길을 어머니의 대리로 바라본 적은 없었습니다. -녹수와는 달리 말이지요.- 고작 모성의 대리가 구원이 될 수는 없어요. 언제까지고 어머니의 죽음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거짓된 어머니를 찾아다니는 것은 구원이라 할 수 없습니다. 공길을 고작 가짜어머니로 취급하는 것은 영화의 격을 상당히 떨어뜨리는 일이 됩니다.
하지만 그 구원 역시 오래가지 못합니다. 왜냐면 공길은 녹수처럼 연산에게 모든 것을 바칠 인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길에게는 장생이, 연산에게는 녹수라는 짝이 이미 있었기 때문이죠. 그들은 동정하고 동정 받는 관계에서 카운셀러와 환자의 관계까지는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겐 이미 서로 사랑하는 짝이 따로 있었고, 무엇보다 연산에게 공길이 종속되는 관계가 아닌 동등한 관계로만이 구원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산이 그토록 바라던 동등한 관계의 존재가, 그의 욕심으로 인해 종속적인 관계로 격하된다면, 즉 동정을 강요하는 관계라면 그것은 구원이 될 수 없기 때문이죠. 그렇게 종속적이어선 안될 그들의 관계는, 이미 서로 짝이 있는 공길을 억지로 자신의 짝으로 만드는 듯, 이야기가 진행되며 무너지게 됩니다.
물론 연산이 그들의 관계를 그렇게 종속적으로 만드려했을까는 의문입니다. 그는 공길의 짝인 장생을 굳이 건드려하지 않았죠. 다만, 공길에게 정성을 다한만큼 자신의 짝인 녹수에게 소홀하였고 녹수는 그에 분을 참지 못하고, 자신만이 연산의 구원이 되리라 믿고 공길을 죽이려 하였을 뿐이지요. 이에 있어 연산이 강제한 부분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그들의 관계는 무너지고, 구원은 실종됩니다. 장생은 눈이 멀고 연산은 거짓어머니인 녹수의 치마폭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연산은 결국 구원을 다시 되찾아냅니다. 장생을 죽이지 않고 줄놀이를 할 기회를 줌으로써, 공길에게 그의 짝을 돌려주며 그들의 관계를 다시 동등한 것으로 되돌립니다. 장생도, 공길도 줄놀이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광대놀이로 구원 받으며, 연산은 광대놀이를 즐기는 한 사람의 관객으로 돌아가 구원 받고, 녹수 역시 연산의 마음을 확인하고는 구원 받습니다. -그녀가 도피하라는 시종에게, 연산이 광대놀이를 보는데 방해되지 않게 묵묵히 손짓으로 거절하는 모습은 아름다웠습니다. 그녀는 연산을 정말로 사랑했더군요.
동등한 사람.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려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자신만을 위한 꼭두각시가 아닌 사람.
연산은 구원받았습니다.
<왕의 남자>.
연산의 구원을 위한 영화였습니다.
잡1-영화 초반 5분은 존재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보다 잘까 했는데, 연산의 카리스마에 결국 끝까지 깨어있었습니다. 장생과 공길 역을 맡은 두 배우 모두 연기력이 좀 -_-합니다...연산과 녹수 아니면 별로 볼 마음이 안생겼을듯. 억지로 사극말투를 쓰려는게 참 안쓰럽더군요, 배우들 모두...연산과 녹수 빼고!
잡2-공길역을 맡은 배우는 솔직히 좀 심합니다...<헤드윅>의 헤드윅은 정말, 남자를 사랑하는 남자가 어떤 남자인지 알게 해주는 목소리를 하고 있습니다만...이 배우는 목소리가 간드러지긴 한데...네? 헤드윅이랑 비교하는 것은 반칙이라구요? 그렇긴하군요 ^^;
잡3-영화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2자로 이름이 끝납니다. 이는 그들에게 성을, 가문을 부여하려하지 않는 의도와 동시에 연산군에게서 '군'이라는 칭호를, 즉 왕이라는 직함을 뺏어갑니다. 이는 등장인물 하나하나를 평등하게 만들며, 무엇보다 연산을 임금이 아닌 한 개인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잡4-마지막 장면을 연산이 입 헤 벌리고 군인들 쳐들어오고 바로 스탭롤 올라왔으면, 또 장생이랑 공길 배우 다르고 비중도 줄어들었으면 이 영화 별 다섯개 줬습니다. 전 연산 나오는 부분말고 재밌게 본 부분이 없습니다. 영화에 대한 평가는 낮은 편입니다. 100점 만점에 70점 정도? 연산 나오는 부분은 90점 주겠음.
잡5-그러니까, 이 영화는 '영화를 너무 좋아하는 투자자가 감독한테 이리저리 참견하다 친한 스텝과 배우들이랑 떨어뜨려놓았더니 이거 감독이 맨날 징징대고 작품도 못만드고 그래서 평소 스텝들한테 돌려주고, 감독이랑만 노는 투자자가 미워 죽겠는 투자자 부인이 투자자가 가정에 돌아온 것을 보고 모두가 행복하게 되었다'라는 겁니다 낄낄낄.
# by | 2006/01/14 02:41 | 내가 사랑한 B급-영화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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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뒤, 군대 가면 3년 뒤에나 뵙겠네요.
그간 감사했습니다.
좋은 나날 되세요-
레스톨님//dvd에 추가장면이 엄청 들어갈 예정이라고 어떤 녀석이 그러더군요 ^^; 그때를 기약하시길.
베도라치님//이런; 의외로 재수란게 하다보면 익숙해지더군요. 힘내시길 바랍니다!
디어//악플러가 등장했다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