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1월 25일
[애니씽 엘스] 노장이 젊은이에게 보내는 작은 충고 하나.

젊은 극작가 제리는 기념일에 멋대로 저녁을 먼저 먹고 와서도 미안한 기색 하나 없고 자기에게는 섹스 불가 선언을 하고도 몰래 바람까지 피우는 최악의 여자친구 아만다와 장래 가수가 꿈인, 뻔뻔하기로 따지면 타의 추종을 불허할 그녀의 엄마 폴라, 무능한 매니저 하비와의 관계 때문에 진퇴양난에 빠진 인물이다. 극히 감정적이고 도발적이며 자유로운 매력의 소유자 아만다에게 첫 눈에 반한 그는 그녀가 평소에 끔찍이도 싫어하던 흡연자라는 사실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에 장애가 되는 건 없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금새 싫증이 나 제멋대로 굴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아만다 때문에, 또 주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들에 안절부절하던 그는 엉터리 같지만 입바른 소리로 그를 일깨워주는 친구 도벨(우디 앨런 분)을 만나 자기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던 사랑과 인생의 교훈을 깨닫게 된다. -야후 영화에서.
아메리칸 파이의 주인공역을 맡은 제이슨 빅스가 맡은 제리는 이전까지 우디 앨런의 영화 중에서 가장 무기력한 주인공입니다. 심약하면서도 익살스러움이 조심스레 뭉쳐있던 우디 앨런의 주인공 상이 제리와 도벨 둘로 분리되었달까요? 제리는 무기력하고 타성적으로 현실에 수긍하고, 도벨의 떠밈에야 겨우 행동을 할 결심을 굳히게 되는 약한 사람입니다. (아니, 우디 앨런이 보기에 요즘 젊은이들이 그렇게 보였던 것일 수도 있지요. '대학가에 아싸가 늘어' 운운하는 기사들 보면 크게 틀린 말도 아니고요...뭐 저도 아싸지만 -_-;)
그에 비해 우디 앨런이 맡은 도벨. 이렇게 엄살을 부리지 않는 우디 앨런은 처음입니다. 그 대신 열심히 신경쇠약 상태 패닉에 빠진 강박증자 제이슨 빅스가 있기 때문일까요? 우디 앨런은 이 영화에서 아마 최초로, 어른으로서 또 노장으로서 후학을 이끌어주는 멘토의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울지도 않고 상처 입었다고 히스테릭하게 방방 날뛰지도 않습니다. 그저 침착하게 자신의 인생관을 어린 친구에게 이야기해주고, 사로잡혀있던 틀을 부술 수 있게 도와주지요.
제리는 무수한 강박들 사이에서 헤매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에겐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지만) 섹시한 여자친구가 있고 (일을 제대로 하는게 하나도 없지만)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하는 매니저가 있습니다.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싶어도 그녀의 섹시함을 놓치기 싫어하고, 매니저를 해고 하고 싶어도 매니저가 먹고살 길이 없어지는 것이 미안하고, 무엇이 자신에게 필요한지 알면서도 다 놓치는...
도벨은 그런 제리의 강박을 하나하나 깨부수고, 그 과정은 여전히 익살스럽습니다 ^^ 우디 앨런이 맡은 도벨은 사실 무지막지한 사람입니다. 자신한테 헛소리를 하는 정신과의사를 소화기로 내려쳐서 감옥에 간 적도 있고, 자신이 주차하려는 자리를 힘으로 빼앗은 사람의 자동차를 몰래 쇠막대로 똥차로 바꿔버리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의 집 방 구석구석마다 손이 닿는 자리에 총을 갖다 놓고 위험에 대비했다며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한 행동들 전부를 어린 친구, 제리에게 권하지요. 그리고 그것은, 분명 과격하지만-효과가 있는 처방이랍니다.
이 영화의 주제는 제목그대로 <애니씽 엘스>지만, 중요한 것은 주제가 아닌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끝없는 익살. 코미디. 유머. 그것이 삶의 진리를 그대로 담고 있고 어떤 철학보다도 훌륭하다는 우디 앨런의 코미디 예찬. 그래요, 인생에서 무겁고 짐스러운 것들을 하나하나 버리고 나면 남는 것은 유머, 단 하나 밖에 없을거라 생각해요. 도벨이 제리에게 한 이야기 중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그 누구도 모릅니다. 그냥 되는대로 지껄인 것일 수도 있어요. 그에게 이혼한 마누라나 전과경력이 있는지 알 길이 없어요. 하지만, 사실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지요. 오로지 도벨의 말은 결코 가치 없지 않다는 것. 그리고 그와 함께 하는 것은 정말 즐겁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삶의 핵심 아니겠습니까 ^^?
덧//
영화를 본지 한참되었더니 글이 영...
덧2//
이제 한숨 돌리겠다 싶었더니 mp3가 고장나고;
덧3//
처음 글에 있었던 외장하드 문제는...
코드가 안꼽혀있었다는 충격적 반전이 (...)
# by | 2006/11/25 18:34 | 내가 사랑한 우디 앨런 | 트랙백 | 핑백(2)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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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훨씬 더 섹시합니다 :) 덧// 처음에 생각한 포스팅 제목은 '젊은 시절 나에게 보내는 편지'였습니다만...'이게 무슨 파페포X냐!!'라는 생각에 집어던졌습니다(...) 예전 포스팅-누르시면 전에 쓴 [애니씽 엘스]포스팅으로 날라갑니다 ^^ ... more
... 번 달걀이 필요해질 그 때까지는요. 라디다, 라디다... 덧// 귀찮아서 블로그 쉬었습니다. 추석 연휴 뒤부터는 바빠서 쉴 것 같아요 :) 덧2// 전에 쓴 [애니씽 엘스] 첫번째. 전에 쓴 [애니씽 엘스] 두번째. ... more
우디알렌,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저평가 받고 있는 듯 해요.
어떤 작품을 골라도 후회할 가능성이 별로 없는 감독인데.
예전 작품도 좋지만, 요즘 작품도 여전히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