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자] 내가 죽였어.

 

 출장안마소를 운영하는 전직 형사 중호. 최근 데리고 있던 여자들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고, 조금 전 나간 미진을 불러낸 손님의 전화 번호와 사라진 여자들이 마지막으로 통화한 번호가 일치함을 알아낸다. 미진을 찾아 헤매던 중 우연히 영민과 마주친 중호. 옷에 묻은 피를 보고 영민이 바로 그놈인 것을 직감하고 추격 끝에 그를 붙잡는다. 그러나 영민을 잡아둘 수 있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공세우기에 혈안이 된 경찰은 미진의 생사보다는 증거를 찾기에만 급급하고, 중호는 미진을 찾아 나서는데…다음에서 살짝 수정.

 한 후배는 제가 사형제도에 반대한다고 이야기하더니 깜짝 놀라더군요. 이게 놀랄 일인가 싶었는데, 제가 요근래 이오공감에 추천한 글 두개-모두 사형제도에 반대하는-가 메인에 뜨지도 못하고 진 것을 보면 놀랄 일이었나봅니다. 놀라워라. 놀라워라. 어쨌든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추격자]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영민 같은 애 살려두고 싶어?' 네. 살려두고 싶어요. 더군다나 [추격자]는 영민을 가해자로 밀어부치는 영화가 아니죠.

 미진이 죽기 전 남긴 메시지에서 성토하는 대상은 영민이 아닙니다. 국가제도도 아닙니다. 자기를 여기까지 몰고온 중호입니다. 중호 역시 누군가의 보호자의 위치에 서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진정 그가 보호자였다면 미진이 그에게 건 전화내용은 살려달라였겠지요. 중호의 행동방식은 지독히도 자본주의적입니다. '니가 내 돈을 떼먹어? 죽었어.' '니가 내 애들 빼돌려? 죽었어.' 그가 미진과 그녀의 딸을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중호의 감정은 보호자, 복수자보다는 채무자의 다급함에 가깝습니다.

 결국 여자들을 위기로 내몬 것은 일차적으로 중호입니다. 이차적으로 중호의 뒤를 봐주는 더러운 경찰이 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이 경찰들을 고작 자기가 똥 맞지 않게 굴리려는 쪼다 시장이 있습니다. 영민은 살인자가 아닙니다. 그의 살인은 해석불가능하며 어떤 점에서 그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만큼이나 자연재앙에 가깝습니다. 미진을 죽인 것은 중호입니다. 경찰입니다. 접니다.

 중호는 윤리적인 주체입니다. 그는 적어도 최선을 다합니다. 남 탓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 책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메꾸려 노력합니다. 포주에다 폭력적인 성격의 그가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은 그 하나만이 유일하게 윤리적 주체로,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지려하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오히려 구조적으로 작용하며 그 채무이행을 막습니다. 경찰이 '이게 다 쟤 때문이야'라고 말하기 위해 영민을 쫓는 반면 중호는 '이게 다 나 때문이야'라고 말하기 위해 쫓는 것입니다.

 [추격자]는 영민이라는 이해 못할 무시무시한 사이코패스가 존재하는 현실에 대한 공포를 그린 작품이 아닙니다. 그것을 방치하고 이끌어나가는 더욱 더 끔찍하고 잔인한 기계덩어리를 응시하게 만드는 작품이며,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그 기계덩어리의 일부이자 장치라는 것을 폭로하는 영화입니다. 결국 우리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가지 뿐입니다. 아무리 끔찍하고 인정하기 싫더라도 우리가 살인자임을 시인하고 채무를 갚기 위해 뛰는 것말이지요.


덧//
제가 감상 쓸 필요 없는 롱런히트작이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제 정치적 입장을 밝히고자-또 이오공감에 올렸다 메인에 뜨지 못한 글들의 주인장님들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지 않고자- 글을 씁니다. 물론 lyh1999님의 텍스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도 인정해야겠지요.

덧2//
미진이 죽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튀는 부분입니다. 작위적인 향이 너무 강하지요. 담배가 그 순간 떨어지지 않았다면? 미행하던 경찰이 조금만 더 일찍 눈치 챘다면? 경찰이 잠을 자지 않았다면? 무엇보다 머리에 정을 맞은 여자가 전화를 가장 먼저 거는 곳은 직장 상사나 경찰이 아닌 119고, 119에 신고했다면 그 즉시 구조원이 왔을 것입니다. 그만큼 튀는 이 장면을 억지로 집어넣어야 했을만큼 이 장면이 가지는 의의는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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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cdc | 2008/03/25 23:57 | 내가 사랑한 B급-영화 | 트랙백 | 핑백(1)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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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dcdc의 잡담창고 : 200.. at 2008/12/28 21:50

... 면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않으려고 하는 반면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사건 모든 과오가 자신의 책임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인 것 같습니)다. 올해 쓴 [추격자]의 리뷰는 이 책을 읽고난 후 연장선상으로 쓴 글이기도 합니다. 4.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남자의 성 여자의 성 ] 라깡 이론 입문서. 프로이트와 비교해주는 것이나 사례 ... more

Commented by ellouin at 2008/03/26 00:05
"내"가 "채무"를 지고 있음을 지적하시는 부분이 맘에 와닿습니다.
Commented by lyh1999 at 2008/03/26 00:22
덧2/ 사실 이 영화는 그 부분 말고도 사태를 너무 배배 꼬아놔서 작위적인 냄새가 조금 많이 나긴 해요. 우연적인 요소도 꽤 많이 개입하는 편이고, 이제 좀 제 갈길을 가겠거니 싶으면 또 이리저리 헤매고. 그러다보니 경찰들의 부조리 묘사도 비약이 아닐까 싶은 느낌도 들더라고요.

근데 그 문제의 슈퍼마켓 살인 씬에서 미진 말고 여형사가 살해당할거라는 추측은 해보지 않으셨나요? 영민의 성희롱 대사에서 떡밥을 열심히 던져놨으니 그 쪽이 훨씬 자연스러운 전개가 됐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미진과 슈퍼 주인만 죽으니 뭔가 아귀가 안 맞는 느낌이었어요.
Commented by Beatrix at 2008/03/26 00:45
저도 이 영화의 결말이, 그 작위적 모양새가 상당히 불만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뭐랄까, 신인감독이 지나친 완벽주의를 추구하다가 전체적인 모양을 다 망가뜨려놓은 그런 느낌이 들었어서요.

그리고 '누가 미진을 죽였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적으신 것처럼 상당히 많은 답이 존재하겠지만, 그래도 저는 미진을 죽인 건 영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누가 죽였느냐'가 아니라, 미진의 죽음에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인 거죠. 감독은 결말에서 서투르게나마 중호에게 책임의 굴레를 덮어씌우는 것처럼 보이는데, 전 이 또한 맘에 들지 않았어요. 또 경찰과 서울시장을 희화한 것도 생각처럼 썩 유쾌하지는 않더군요.


.....라지만 이런 불평불만에도 불구하고 진짜 멋진 영화였다는 건 부인할 수가 없네요. 저번에 만났을 때도 이 영화에 대한 얘기들을 두서없이 막 늘어놓았던 기억이 있는데, 늦게라도 보시게 되어 기쁘네요. 지금 추세로 봐서는 최종스코어가 꽤 괜찮을 것 같은데 감독의 차기작이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 아, 저도 극장에서 영화보고 싶어요. ㅠㅠㅠ
Commented by dcdc at 2008/03/26 02:00
ellouin님//저번에 읽은 어떤 책에서 좀 영향을 받았답니다. 읽을 땐 자살하고 싶었는데 지금와서보니 읽길 잘한 것 같기도 하고요 ^^;
lyh1999님//전 그 형사가 죽지 않은 것을 일종의 맥거핀으로 받아들였지요 ㅋ; 아, 그 부조리에 관해서는 위에다 따로 써서 올려놨습니다 :)
Beatrix님//저도 극장간지 오래됐어요 ㅠ_ㅠ [추격자]는 봤을 때 감흥이 워낙 길게 남아서 이렇게 쉽게 쓸 수 있긴 했지요. 그리고 사실 '누가' 책임을 지는 것은 일종의 도피라고 생각해요. 이런 일은 당연히 '모두가' 책임 져야 할 일이니까요. 무엇보다 이 영화의 포커스는 중호에 맞춰있기도 하고요 ^^;;
Commented by 사노 at 2008/03/26 11:04
저도 덧2에 공감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슈커마켓 장면은 제 상식으론 이해가 가지 않아요. 동네에서 슈퍼마켓 아주머니들은 대개 상황판단을 잘 하시는 편인데---잔뼈가 굵었다고도 하죠;;----피투성이에 죽어가는 여자를 보고 신고전화를 단 한 번만 하고 늦어도 재촉전화를 하지 않거나, 또는 다른 곳에 전화를 걸지 않았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비현실적이거든요;;; 포주에게 전화를 걸 여력이 있다면 아마 신고전화를 몇 번 더 걸지 않았을까 하는데. 그러니까 굳이 [누가 미진을 죽였냐고? 경찰이야, 아니 이 사회체제야, 아니 우리모두야]를 강조하려는 의도는 알겠는데 너무 작위적이라 오히려 화가 났던 기억이 납니다. (^^);;
Commented by 스카이워커 at 2008/03/26 14:03
여형사 관련 장면이 편집되었다는 글을 보았어요. (이곳 http://against.egloos.com/1514522 ) 여형사가 공포에 뒷걸음을 친 후 경찰에 신고하는 장면이라던데, 그렇다고 해서 튀지 않는 장면으로 바뀌지는 않지만 또하나의 이슈거리 제공은 하는 듯 싶구요. 만약 그렇게 찍었더라도 여성의 나약성 강조라기보단 폭력적 상황 앞에서의 여성의 본능적 사회적 성향이 그러하게 된 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보여주려한 게 아닐까해요. 누군가에게 실제로 맞아보는 경험없이 크는 대다수의 여성들은 폭력 앞에 무기력해지기 쉬울 것도 같구요. 추격자 보고 일주일간 악몽에 시달렸었어요. 좋은 영화. :)
Commented by dcdc at 2008/03/26 16:02
사노님//저도 이 부분에서 '현실이 아니구나'라는 느낌을 팍 받고 몰입에서 쫓겨나왔지요 ㅋ;
스카이워커님//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그래도 119를 불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ㅠ_ㅠ 그리고 저는 잠 푹 잘잤습니...OTL
Commented by 달바람 at 2008/03/29 00:46
생각해보면 경찰은, 아무리 여형사라도 죽지 않았군요. 그들은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았고, 그래서 낮에 졸 수도 있던 거죠. 반면에 문이 닫아놓은 슈퍼마켓이라도, 안전할 수 없는 공간입니다. 여형사가 거기 들어가지도 않고 지원요청도 하지 않은 것은, 거기는 그녀가 상관할 필요가 없는 공간이라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범인이 처음부터 밝혀지기 때문에 범인에 집중할 필요가 없고, 힘들긴 하지만, 범인은 범인이라서 범인인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Commented by dcdc at 2008/03/29 13:01
아 그 범인에 집중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대단한 매력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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