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3월 25일
[추격자] 내가 죽였어.

출장안마소를 운영하는 전직 형사 중호. 최근 데리고 있던 여자들이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고, 조금 전 나간 미진을 불러낸 손님의 전화 번호와 사라진 여자들이 마지막으로 통화한 번호가 일치함을 알아낸다. 미진을 찾아 헤매던 중 우연히 영민과 마주친 중호. 옷에 묻은 피를 보고 영민이 바로 그놈인 것을 직감하고 추격 끝에 그를 붙잡는다. 그러나 영민을 잡아둘 수 있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공세우기에 혈안이 된 경찰은 미진의 생사보다는 증거를 찾기에만 급급하고, 중호는 미진을 찾아 나서는데…다음에서 살짝 수정.
한 후배는 제가 사형제도에 반대한다고 이야기하더니 깜짝 놀라더군요. 이게 놀랄 일인가 싶었는데, 제가 요근래 이오공감에 추천한 글 두개-모두 사형제도에 반대하는-가 메인에 뜨지도 못하고 진 것을 보면 놀랄 일이었나봅니다. 놀라워라. 놀라워라. 어쨌든 그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추격자]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영민 같은 애 살려두고 싶어?' 네. 살려두고 싶어요. 더군다나 [추격자]는 영민을 가해자로 밀어부치는 영화가 아니죠.
미진이 죽기 전 남긴 메시지에서 성토하는 대상은 영민이 아닙니다. 국가제도도 아닙니다. 자기를 여기까지 몰고온 중호입니다. 중호 역시 누군가의 보호자의 위치에 서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진정 그가 보호자였다면 미진이 그에게 건 전화내용은 살려달라였겠지요. 중호의 행동방식은 지독히도 자본주의적입니다. '니가 내 돈을 떼먹어? 죽었어.' '니가 내 애들 빼돌려? 죽었어.' 그가 미진과 그녀의 딸을 대하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중호의 감정은 보호자, 복수자보다는 채무자의 다급함에 가깝습니다.
결국 여자들을 위기로 내몬 것은 일차적으로 중호입니다. 이차적으로 중호의 뒤를 봐주는 더러운 경찰이 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이 경찰들을 고작 자기가 똥 맞지 않게 굴리려는 쪼다 시장이 있습니다. 영민은 살인자가 아닙니다. 그의 살인은 해석불가능하며 어떤 점에서 그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안톤 쉬거만큼이나 자연재앙에 가깝습니다. 미진을 죽인 것은 중호입니다. 경찰입니다. 접니다.
중호는 윤리적인 주체입니다. 그는 적어도 최선을 다합니다. 남 탓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 책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메꾸려 노력합니다. 포주에다 폭력적인 성격의 그가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은 그 하나만이 유일하게 윤리적 주체로,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지려하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오히려 구조적으로 작용하며 그 채무이행을 막습니다. 경찰이 '이게 다 쟤 때문이야'라고 말하기 위해 영민을 쫓는 반면 중호는 '이게 다 나 때문이야'라고 말하기 위해 쫓는 것입니다.
[추격자]는 영민이라는 이해 못할 무시무시한 사이코패스가 존재하는 현실에 대한 공포를 그린 작품이 아닙니다. 그것을 방치하고 이끌어나가는 더욱 더 끔찍하고 잔인한 기계덩어리를 응시하게 만드는 작품이며, 무엇보다 우리 자신이 그 기계덩어리의 일부이자 장치라는 것을 폭로하는 영화입니다. 결국 우리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가지 뿐입니다. 아무리 끔찍하고 인정하기 싫더라도 우리가 살인자임을 시인하고 채무를 갚기 위해 뛰는 것말이지요.
덧//
제가 감상 쓸 필요 없는 롱런히트작이지만, 언제나 그러하듯 제 정치적 입장을 밝히고자-또 이오공감에 올렸다 메인에 뜨지 못한 글들의 주인장님들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지 않고자- 글을 씁니다. 물론 lyh1999님의 텍스트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도 인정해야겠지요.
덧2//
미진이 죽는 장면은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튀는 부분입니다. 작위적인 향이 너무 강하지요. 담배가 그 순간 떨어지지 않았다면? 미행하던 경찰이 조금만 더 일찍 눈치 챘다면? 경찰이 잠을 자지 않았다면? 무엇보다 머리에 정을 맞은 여자가 전화를 가장 먼저 거는 곳은 직장 상사나 경찰이 아닌 119고, 119에 신고했다면 그 즉시 구조원이 왔을 것입니다. 그만큼 튀는 이 장면을 억지로 집어넣어야 했을만큼 이 장면이 가지는 의의는 큽니다.
# by | 2008/03/25 23:57 | 내가 사랑한 B급-영화 | 트랙백 | 핑백(1) | 덧글(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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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지않으려고 하는 반면 자신이 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모든 사건 모든 과오가 자신의 책임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인 것 같습니)다. 올해 쓴 [추격자]의 리뷰는 이 책을 읽고난 후 연장선상으로 쓴 글이기도 합니다. 4.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남자의 성 여자의 성 ] 라깡 이론 입문서. 프로이트와 비교해주는 것이나 사례 ... more
근데 그 문제의 슈퍼마켓 살인 씬에서 미진 말고 여형사가 살해당할거라는 추측은 해보지 않으셨나요? 영민의 성희롱 대사에서 떡밥을 열심히 던져놨으니 그 쪽이 훨씬 자연스러운 전개가 됐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미진과 슈퍼 주인만 죽으니 뭔가 아귀가 안 맞는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누가 미진을 죽였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적으신 것처럼 상당히 많은 답이 존재하겠지만, 그래도 저는 미진을 죽인 건 영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누가 죽였느냐'가 아니라, 미진의 죽음에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인 거죠. 감독은 결말에서 서투르게나마 중호에게 책임의 굴레를 덮어씌우는 것처럼 보이는데, 전 이 또한 맘에 들지 않았어요. 또 경찰과 서울시장을 희화한 것도 생각처럼 썩 유쾌하지는 않더군요.
.....라지만 이런 불평불만에도 불구하고 진짜 멋진 영화였다는 건 부인할 수가 없네요. 저번에 만났을 때도 이 영화에 대한 얘기들을 두서없이 막 늘어놓았던 기억이 있는데, 늦게라도 보시게 되어 기쁘네요. 지금 추세로 봐서는 최종스코어가 꽤 괜찮을 것 같은데 감독의 차기작이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 아, 저도 극장에서 영화보고 싶어요. ㅠㅠㅠ
lyh1999님//전 그 형사가 죽지 않은 것을 일종의 맥거핀으로 받아들였지요 ㅋ; 아, 그 부조리에 관해서는 위에다 따로 써서 올려놨습니다 :)
Beatrix님//저도 극장간지 오래됐어요 ㅠ_ㅠ [추격자]는 봤을 때 감흥이 워낙 길게 남아서 이렇게 쉽게 쓸 수 있긴 했지요. 그리고 사실 '누가' 책임을 지는 것은 일종의 도피라고 생각해요. 이런 일은 당연히 '모두가' 책임 져야 할 일이니까요. 무엇보다 이 영화의 포커스는 중호에 맞춰있기도 하고요 ^^;;
스카이워커님//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 그래도 119를 불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ㅠ_ㅠ 그리고 저는 잠 푹 잘잤습니...OTL
범인이 처음부터 밝혀지기 때문에 범인에 집중할 필요가 없고, 힘들긴 하지만, 범인은 범인이라서 범인인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