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꽃비]

 

※주의사항
. 이하의 텍스트는 영화 [키사라기]의 오마쥬-팬픽은 개념이 좀 다른듯-입니다.
. 또한 이하의 텍스트는 전부 픽션이며 당블로그와는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 김꽃비양 죄송합니다. 저는 스토킹질할 체력이 없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성규야 미안해.
. 완자 너도 미안.
. cdcd 너는 별로 안 미안.



1.남자와 남자와 씹덕.
"징하군."
"이 정도는 별 것도 아니죠. 제 방은 이거 세배는 된다구요."

 한심한 녀석. 그나저나 만화책 한번 징하게 많다. 이 좁은 골방의 3면을 만화로 가득 채우다니, 부모 속 좀 썩였겠구만. 전일 이 궁상새끼는 왜 지네 집에 더 많다면서 사방팔방 뒤지느라 정신이 없어. 웃기는 짜장놈.

"이런 새끼들은 쳐박혀서 게임이니 인터넷이니 하는 새끼들 아냐? 왜 애먼 칼을 맞아 뒈졌다냐."
"만화 종류를 보니까 씹덕은 맞습니다. 그래도 학교 빼먹지도 않고 단대 부학생회장도 한번 했고, 활발한 씹덕이네요."
"만화책이나 영화테잎 그만 뒤지고 김꽃빈지 똥빈지하는 여자 단서나 찾아 봐."
"아뇨, 젊은 놈들 사건에서 만화는 중요해요. 특히 칼로 찔려서 흘린 피로 다잉메시지를 남기는 씹덕들 사건은 더 그렇죠. 얼마나 현실성 없이 만화만 보고 자랐으면 다잉메시지를 남길 생각을 하겠어요?"
"닥치고."

 저 새끼는 언제까지 저러지. 만화보고 형사가 되기로 결정했다는 이야기를 농담으로 생각한 내가 병신이다. 어쭈? 꼴 봐라? 선배가 두눈을 부릅 뜨고 있는데 컴퓨터 키고 마우스를 부여잡네?

"본 경관은 지금부터 피해자의 컴퓨터에서 김꽃비라는 용의자와 관련된 증거자료를 수색해 볼 예정이오니 아무쪼록 염려 마시고 수사에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개새끼 꼴통에 총알을 쑤셔 박고 말겠어.

"이 미친 놈 너 10분내로 김꽃비 못찾으면 뒤질 줄 알아."
"피해자 컴퓨터에서 야동 정리하는데도 20분은 걸리는데 10분은 너무 짧아요."
"내가 널 피해자 부모 앞에서 벨트로 후려치면 안되잖아. 닥치자?"

 아무리 뒤져도 나오는 게 없구만. 어라? 저 후레자식 또 컴퓨터로 만화보네? 족쳐야지. 오늘 한번 피해자 되어 보라고.

"와, 이 피해자 진짜 좋은 사람이네요!"
"너 오늘 좀 맞자...뭐라고?"
"자료나 즐겨찾기나...취향 멋져요. 형사랑 시체 관계만 아니면 좋았을 텐데."

 다행이군. 뭘 찾고는 있었어. 지 취향에 맞는 거라서 그렇지.

"돌아가자. 찾을 만큼 찾아봤으니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봐야겠어. 근데 너 뭐하냐?"
"아...이 만화책은 중고도 구하기 힘들거든요. 카오루씨의 귀향이랑 만화사이언스라니, 좋아. 마음에 들어. 증거품으로 압류수색하겠습니다."
"너 도대체 경찰을 뭐라고 생각하냐? 뒤질래?"

 이 미친놈은 끝까지 만화책을 부여잡는다. 그래, 씨발 이게 씹덕이군. 열라게 이 멍청이의 엉덩이를 걷어찼지만 절대 놓지 않는다. 으휴! 으휴! 언제 사람 될래! 언제 사람 될래! 뒤통수에다 주먹을 열 번 정도 박아 넣으니 그제야 책을 버리고 밖으로 나간다. 씹덕새끼...끝까지 사람 골머리를 썩혀. 이 자식 밖으로 나간 것 맞지? 나가는 것 확인하고 방문도 닫자. 좋아. 됐어.

"고우영. 십팔사략 옛 판본...이 자식을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만화책 열권을 잽싸게 가방에 집어넣는다. 후, 김꽃빈지 똥빈지 감사해야겠군. 덕분에 십팔사략 전질을 구했으니 은인이다, 은인.


2.친구와 고기와 사인DVD
 야, 경찰은 역시 무섭더라. 너는 또 어쩌자고 이런 짓을 해서 취조까지 받게 만드냐? 가지가지한다. 하긴 우리 슬슬 경찰도 만나고 할 나이가 됐지. 원님 덕에 나팔 분다고 니 덕에 경찰서도 가고 아주 고맙다. 나쁜 녀석. 니랑 같이 지내느라 아주 별 일을 다 겪는구나. 이제는 그럴 수도 없겠지만 말이야. 이 좁은 골목길이 니 마지막이니까. 어쩔 수 없지.

 하얀 분필로 아스팔트에 시체 윤곽선 그려놓은 것 보는 것도 니 덕분이네. 설마 내가 아는 사람 시체가 이런 윤곽선으로 남을 거라곤 전혀 상상도 못했어. 길에서 누우라면 알아서 눕던 너니까 그나마 어울리는 것 같다. 그 때 얼마나 쪽팔렸는지 나 원 참. 지금은 대낮에 니가 분필선으로 도로 위에 누워있다만 좁은 골목이라 구경꾼은 없으니 그럭저럭 부끄럽지는 않다.

 뭐 사실 나도 너 쪽팔릴 일 많이 하긴 했지? 그것도 니 탓이긴 해. 항상 말해왔지만 그 때 니가 나한테 멋지다 마사루를 안 보여줬다면 우리 인생의 궤도는 참 달라졌을 거야. 그 날 너의 그 빌어먹을 추천이 아니었다면 나는 중3 축제 때 마사루 복장을 입고 전교생들 앞에서 섹시코만도를 시전하지도 않았겠지. 어쨌든 내가 전설이 된 것에도 니 탓이 꽤 있다.

 아직도 생생해. 하교길이었지. 그때 너 아주 말하는 지가 웃기다는 듯이 열렬히 떠들었잖아. 이 만화에서 주인공이랑 친구들이 크리스마스에 파티를 여는데, 어두운 방에 틀어 박혀서, 촛불 네 개를 킨다? 그것뿐인 거야. 크리스마슨데. 그러더니 케잌도 아니라 족발을 먹어대는 거야. 음침한 얼굴로. 대단하지 않냐? 진짜 웃겨! 아 것 참. 평소 기억도 안 나던 일들이 다 떠오른다. 니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니 죄가 크긴 커. 나한테 마사루도 보여주고 미스터부도 보여주고. 넌 니가 좋아하는 건 주변에 다 뿌리고 다녔지.

 그 영화배우에 대한 사랑도 대단했지. 김꽃비라 했던가. 그 때 기억 나냐? 나 군대서 휴가 나온 날 너한테 전화했을 때. 넌 뭐 이거 더 물어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영화 보러가자고 말했었지. 무슨 영화냐는 질문에 내가 좋아할 거라는 말만하고. 그리고 너랑 결혼할 예정인 배우가 나온다고. 그 땐 얼마나 황당했는지. 나 만나자고 모인 놈들이 너 때문에 단체로 김꽃비 보러 영화관을 찾았으니 웃겼어 진짜. 막상 만나서는 너는 니 블로그에서 부른 사람들이랑 놀고 앉았구, 응응. 블로그에도 우리한테 한 것처럼 그 영화 광고하고 다녔었대매? 너도 참 꼴통이야.

 결국 그 날 김꽃비 만나서 재밌게 놀았냐? 그날 그 영화 감독들이랑 배우들이랑 극장에 인사하러 오는 날이었다며. 우린 진짜 아무 것도 모르고 끌려가서 영화만 보고 나왔는데, 너는 밤늦게 질리도록 뒷풀이 자리 있었으니 독해, 독해.

 술도 싫어하고 담배도 싫어하는 놈이니 내가 뭐 가지고 올 게 없더라. 나처럼 고기 좋아하는 놈도 아니고. 그래서 애들끼리 상의해봤는데 역시 니가 그 날 김꽃비한테 사인 받은 영화 DVD가 가장 좋지 않을까 싶어서 갖고 왔다. 새벽되면 청소부 아저씨가 치울테니까 그 전에 영혼이든 뭐든 알아서 와서 가지고 가. 왜 또 하필 길바닥에서 죽어서 선물 주기도 힘들게 해.

 근데 너 말이다. 니 피로 여기 바닥에 김꽃비 이름 석자를 적었다며? 도대체 왜 그랬냐? 설마 김꽃비가 진짜 널 죽인 건 아니겠지? 일단 경찰 아저씨들한테 김꽃비가 누군지는 가르쳐줬어. 니가 좋아하는 B급 영화배우라고. 니 꿈이 김꽃비랑 결혼하는 거였다고 얘기해줬지. 정확히는 꿈이 아니라 예정된 미래였던가? 글쎄 그건 뭐 이제 전혀 중요하지 않지. 너는 이제 죽었고, 네가 말한 예정된 미래는 빗나갔으니까. 못난 녀석.


3.외톨이와 블로그와 딸기우유
 더 이상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 적어도 일주일에 하나는 올라왔건만.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과의 이별도 이렇게 아릴 수가 있구나. 그 사람의 글은 명문이라기보다는 잡문에 가깝고 남보다는 자신을 위해 쓴 글들이었음에도 내게 크게 응어리져 남아있다. 쓸쓸하면서도 어딘지 기쁘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모두 외로운 사람이라던가. 그의 절필 아닌 절필이 나 같은 불량독자와의 이별뿐만이 아니라 그 자신의 허전함과의 이별이 아닐까 생각하면 헤어짐의 아쉬움만큼이나 그 사람을 응원해 줘야지 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진정한 애독자라면 아아, 드디어 저주에서 벗어나셨군요라고 이 이별을 축하해 주어야 마땅하지 않는가.

 사디스트들의 아이러니는 가학의 대상이 죽을 때까지 밖에 고문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글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고독에서 나온 글에 힘을 얻고 구원을 받는 것은 좋다. 글쓴이를 응원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그가 스스로를 구원했을 때, 그의 글이 목적을 다했을 때 모든 것이 사라진다. 언제나 독자만이 남는다. 내가 그를 추억하는 한 아직 우리는 현재진행형이다. 어쩌면 작가와 독자의 만남은 항상 이별을 위해 이루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목적을 이루었다. 아쉽게도.

 블로그에 올라온 글들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추천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문장은 다듬어지지 않았고 지지부진한 표현도 새삼스럽지 않게 보였다. 전문적인 내용도 없고 일상적 공감을 끌어내지도 못했다. 통찰력보다는 인내력이 돋보이는 글이었다. 계속해서 쓴다는 끈기 말고는 볼 것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나는 아직 그의 글 언저리에 남아있다. 그렇기에 나는 아직 그의 글 언저리에 남아있다.

 철저한 범부의 글. 아무 재능도 없고 능력도 없는 그 사람이 아둥바둥 멈추지 않고 쓴 글. 이런 글들에는 천재의 한줄 시나 거장의 마스터피스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텍스트 자체의 감동이 아닌 인간 자체에 대한 애정을 불러들이는 매력이.

 그는 정말 아둥바둥했다. 내가 그의 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어설픈 소설 하나 때문이었다. 결혼식 한시간 전, 화장실에 갇혀버린-신부에게 버림받은 신랑에 대한 내용이었다. 사랑 받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그런 상황에서 필사적으로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안에 사람 있다고 외치는 주인공. 안에 사람 있으니 문을 열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제발 열어달라는 그 역설적인 상황은 실로 그의 페르소나 자체였으리라.

 그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가 김꽃비였다는 것도 아마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김꽃비를 좋아하는 이유가 그녀가 맡은 배역, 소단에 대한 동경이 아닌 동질감 때문이라 말했다. 고아. 외톨이. 꿈도 없고 욕심도 없는. 삶을 지탱하는 것은 가냘픈 담배 한 개비. 그래, 담배를 그렇게나 어설프게 피는 모습에 반했다던가. 발칙한 죄인 현대인, 알량한 자기중독의 권리. 위로해주는 것은 오직 깊은 밤 극장의 환상들 뿐.

 외로운 보통 사람의 발악이 나는 너무나 좋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발악하는 외로운 보통 사람이었다. 꾸준히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기 자신을 폭로하는 글을 쓰고. 가상의 이상적 독자들에게 노출증적 텍스트를 토해내는 그가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지도 않음에도-그가 디워를 신나게 깠을 때는 꽤 많은 사람이 왔었다만. gbgb라는 그의 닉네임을 거꾸로 쓴 bgbg라는 사람도 등장했고.-그는 꾸준했다.

 그런 그가 이제는 없다. 아마 그 허전함이 채워졌기 때문이라고, 그를 가둔 화장실의 문이 조금은 열린 것이리라고 믿는다. 오프모임을 한번 한 이후로는 블로그스피어에서 그의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다. 모임에 김꽃비가 찾아와 그의 남은 반쪽을 채워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르리라.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이고, 그와 나를 이어주는 끈이라고는 블로그 뿐. 이렇게 내 멋대로 그의 마지막을 꿈꾸는 것으로 충분하다. 어쨌든 나는 그의 탈주에 축배를 든다. 550원짜리 딸기맛 우유를 들어 모니터에 부딪친다. 축하해요. 드디어 소녀가 날아왔군요.


4.bgbg와 gbgb와 핸드폰 배경화면
"니...니 잘못이야!"

 나는 죄 없어. 개새끼. 밀쳤는데. 그냥 밀쳤는데. 왜 피가 나와. 난 잘못 없다. 벽에 이렇게 단단한 쇠막대가 있으리라고 누가 상상했겠어. gbgb 저 새끼는 힘을 주더니 막대에서 제 몸을 빼낸다. 피가 난다. 쪼끄만 새끼가 그러게 왜 깝쳐? 그러게 애꿎은 영화 욕할 때부터 알아봤다. 분명 이렇게 키워짓 하는 병신은 꼬꼬마일거라고. 병신. 병신. 병신!

"그거 내놔!"

 핸드폰을 꺼내더니 어디다 전화를 한다. 신고할 생각이냐. 나쁜 놈. 고작 한번 밀친 것 같고 신고를 하려고. 핸드폰을 나꿔 종료버튼을 누른다. 소녀가 날아온다? 병신, 배경화면에 별 헛소리를 다 써놓았네. gbgb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진다. 피가 계속 나온다. 꿈틀꿈틀 움직인다. 씨발 진짜 많이 나오네. 어휴 진짜 난 또 왜 이 새끼를 만나서 이 곤란이래.

 별 생각 없이 왔다 엄청 고생한다. 장난삼아 왔다. 현피하러 왔다. 오프모임 한다길래 근처서 놀다가 다 헤어질 때 덮칠라고 왔는데, 이렇게 될 줄이야. 젠장, 내가 니 사칭한 게 그렇게 큰 죄냐? 왜 내 덧글을 지우고 비아냥거리냐? 또 그 영화는 왜 씹냐? 미친 새끼. 니가 그렇게 배에 헛바람만 들어가서 잘난 척 씨부리니까 구멍이 뚤리는 거야 등신아.

 새끼가 부들부들 떨더니 멈춘다. 뚝. 죽는 거 아냐? 다행히 내 얼굴 제대로 보지 못했다. 누군지도 모른다. 바닥에 피가 흥건하다. 안 돼. 여기 계속 있으면 안 돼. 내가 범인으로 몰리면? 벽에 박힌 쇠막대를 뽑는다. 피가 묻는다. 일단 이거랑 핸드폰을 어디다 몰래 버리자. 안 들킬 곳에.

 쓰러진 gbgb의 몸을 더듬는다. 지갑. 지갑을 찾는다. 강도가 했다고. 속여야 해. 생각해보니 강도는 안 된다. 꼬마새끼 지갑 훔치겠다고 칼로 찌르나. 부검한다. 사고인 게 들통 난다. 강도는 안 된다. 안 된다. 돌아버리겠다. 진짜 돌아버리겠다.

 그러고 보니 이 새끼. 맨 날 블로그에서 김꽃비랑 결혼하겠다고 그랬다. 김꽃비가 누군지는 모른다. 이 새끼가 좋아하는 년인 거는 확실하다. 오냐, 이왕 너 죽이는 거 아주 확실하게 파탄 내준다. 니가 좋아하는 년 한번 엿 먹이고 가라. 찌질아. gbgb의 손가락에 이 새끼 피를 묻힌다. 그리고 바닥에 조심스레 이름을 쓴다. 김...꽃...비...좋다. 아주 좋다.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 하늘을 대신해 내가 천벌을 내린 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된다. 나쁜 새끼. 이게 다 니가 겉멋만 들어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충무로 권력 똥꼬 빨면서 소수자들을 탄압한 대가다. 뭐 지가 보는 것들은 다 예술작품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은 상업적이고 속물이다 이거지? 무식한 녀석. 돈 잘 버는 영화가 좋은 영화다. 김꽃비인지 누군지 모르겠지만 너 같은 한국영화계의 적 때문에 인생 종치게 되었다. 다 니 탓인 줄 알아라. 어쨌든 난 이제 도망가마. 죽어라.


5.김꽃비와 타란티노와 우디 앨런
 아파...아호. 주마등은 아직 안 보이네, 썅. 어떤 미친 새끼가 나를 밀친 후로 기억이 안나. 어떻게 된 거야? 아, 그래. 쇠막대가 내 배를 뚫었지. 씨발. 셔츠가 피로 범벅이네. 내장이 상했나, 진짜 아파. 일어설 수가 없어. 몇 살이나 처먹었다고 벌써 천국 고고씽이냐. 어라? 핸드폰은 또 왜 없어? 아...맞다...그 개새끼. 핸드폰도 채갔구나. 젠장, 남을 이 꼴로 만들었으면 일단 병원에 신고는 해줘야 될 것 아냐.

 손에 막 끈덕지게 묻은 건 뭐야? 피군. 와. 사람 피가 굳으면 느낌이 이렇구나. 근데 왜 손가락에 피가 묻었지? 바닥에 글씨를 쓴 건가? 그 와중에? 이야...내가 진짜 무의식 속에서도 씹덕노릇을 하는구나. 장하다, 나. 자랑스럽다, 나. 미친, 유족들이 아주 피눈물 좔좔 흘리면서 내 씹덕임을 추모하는 꼴을 볼 수는 없지. 뭐라고 쓴 거야?

 김꽃비. 김꽃비라고 써놓았다. 와...나 진짜 대단해...죽기 전까지 김꽃비 생각이야...내가 이 정도로 바보구나...놀라워...아냐, 아니야. 아무리 내가 지금 죽을 만큼 아파서-문학적 수사가 아냐, 젠장!- 기억이 훼까닥 꼴까닥해도 이런 걸 기억 못할 만큼 맛이 가진 않았어. 그렇군. 아까 나 밀친 새끼가 했겠군. 내 블로그 왔던 새끼구나. 그러면 김꽃비를 모를 리가 없지. 혹시 bgbg 그 머저리가 찌른 건 아니겠지...푸하하, 이 와중에도 헛소리를 지껄이는 내가 자랑스럽다. 썅.

 남은 힘을 다해 이름을 지운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 꽃비양한테 괜한 똥물이 튀는 일은 피해야지. 어? 아냐. 지우지 마. 멈추고. 생각하자. 이거 꽤 괜찮다. 일단 내가 뉴스에 나온다고 가정해 보면, 오오...9시 뉴스에 김꽃비 이름 석자가 나온다 이거지? 멋져. 좋아. 뉴스에 못나와도 괜찮아. 어쨌든 경찰 아저씨들이라도 알게 될 거 아냐! 괜찮은데...

 배를 손으로 마구마구 문지른다. 잉크가 얼마 안 남았어. 아껴 써야 해. 나는 진짜 죽을 만큼-아 씨발 또 문학적 수사가 아니잖아!- 힘을 다해서, 최대한의 달필로, 평소와는 달리 매우 깔끔하게 이름 석자를 남긴다. 김자 꽃자 비자. 좋아...지금 내가 손가락이 두개로 보이긴 하는데 그런 상황에서도 똑바로 읽힐 정도로 잘 썼어. 혹시 내가 0.5개만 썼는데 눈에는 1개로 보이는 것 아냐? 아, 모르겠다. 제기랄. CSI를 믿어보자고. 내가 지금 김꽃비를 쓰려고 했는지 쿠엔틴 타란티노를 쓸라고 했는지 정도는 구분할 것 아냐.

 가물가물하다. 점점 어두워진다. 세상의 불이 차분히 꺼져가고 있다. 곧 하느님 그 찐따를 만나겠군. 항의해야지. 전쟁과 기아, 차별과 억압, 폭력과 눈물. 따질 것들이 많다. 갖은 욕설을 다해 그 지저분한 면상에 던져줘야지. 하느님 왜 이리 씨발 좆같습니까. 그래. 그래야지. 그러면 하느님 너는 이렇게 대답하는 거야. 새꺄 그래서 김꽃비가 있잖아 라고. 완벽해. 왓어원더풀월드야. 더할 나위 없이 우디 앨런스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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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cdc | 2005/01/12 00:00 | | 트랙백 | 핑백(1)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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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ked at dcdc의 잡담창고 : [김꽃.. at 2008/06/02 22:43

... [김꽃비] . 요즘 블로그에 너무 꿀꿀한 글만 올려서 좀 밝은 글을 올리고자 [김꽃비]를 수정해 올렸습니다. 수정해야지 수정해야지했다가 이런 기회가 되어서야 올리는군요. 구어체로 ... more

Commented by 충격 at 2008/06/02 22:35
...어?
뭔가 데자뷰가...
Commented by dcdc at 2008/06/02 22:41
레드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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