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하루 한번, 티타임.

 
 아나톨 프랑스는 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읽지 않으냐고 묻자 “인생은 너무 짧고 프루스트는 너무 길다(la vie est trop courte, et Proust est trop long)라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프루스트의 남동생인 로베르 프루스트는 “슬픈 일은, 사람들이 매우 아프거나 다리가 부러지지 않고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을 기회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했구요.-니노공주님 블로그에서, 무단펌.


 1권을 읽는데 꼬박 3주가 걸렸네요. 아예 책을 손에 잡지 않은 날도 있고 하루 20페이지 읽은 날도 있고, 결국 20여일에 걸쳐서 겨우 한권을 끝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에 대한 제 강박에도 불구하고 전혀 답답하지가 않았답니다. 점심식사가 끝나고, 살짝 달콤한 과자 두조각과 차 한잔을 마시는 시간을 가질 때 '우헤헤 나 짜장면 세그릇에 짬뽕 한그릇 탕수육 한접시 먹었다 우헤헤'하듯 '차 리필! 과자 리필! 차 백잔! 과자 백개!'이러지 않듯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방법도 매한가지 같아요.

 그렇게 티타임을 갖는 느낌으로 책을 읽다보니 책내용만큼 사치스러운 나날을 보내는 것 같아 과소비의 쾌감을 느끼기도 한답니다. 지하철에 앉아 약속장소/학교로 가는 도중에 짬짬이만 읽고 있는데, 도무지 과식은 못하겠고 거기다 세미나니 강좌니 자습이니 읽어야 할 책이 산더미처럼 쌓인 마당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올인할 수는 없겠더라고요. 하지만 그 올인할 수 없는 와중 짬짬이 읽는 것이 오히려 이 책의 맛을 더 부각시키네요. 빈 속에 차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것보다 코스 한바퀴 돌고 디저트와 함께 차를 홀짝이는 것이 훨씬 더 고급스럽잖아요?

 이제 10권 남았습니다. 1권이랑 똑같은 속도로 읽는다고 치면, 또 방학이 끝나 더 더뎌질 것을 생각하면 오싹해지기도 합니다만 이 도전 아닌 도전이 기대되는 것은 사실이네요. 무협지 읽는 속도로 파바박 읽으면 다른 책들에 도전할 기회가 늘어나긴 하겠지만 또 그렇게 읽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교수님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같이 진도 맞춰서 읽자고 하셨던 것에 아직까지 답변을 안드리고 혼자 몰래 홀짝홀짝 보고 있답니다. (제가 미리 진도 안 빼놓으면 교수님이 삽시간에 추월하실 듯도 해서 -_-;) 길고 긴, 장식적이면서 과잉된 문장을 한줄 한줄 음미하며 읽으니 내년 여름까지 가방에 넣을 책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


덧//
니노공주님이 조언하시길 다 읽고 자신에게 상을 주라고, 자기는 통닭 한마리 자기한테 사줬다고 했는데 한참 까마득하니 뭘 상으로 줘야할 지도 모르겠군요. wii를 사주고 싶은데 돈이 없다능.

덧2//
그나저나 이 책을 읽으니 니노공주가 왜 니노공주인지를 알겠어요. 어쩌다 이 사람이 니노공주라는 지위에 오르게 되었는지 정말 흥겹게 읽히고 있네요. 어쩜 책을 읽으면서 니노공주 생각이 나는지 ㅎㅎㅎ 프루스트를 읽는다는 생각보다 니노공주를 읽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네요 :)

덧3//
우디 앨런처럼 [젤리그] 마지막에서 '요즘 [백경]을 읽기 시작했어요.'라고 말하는 기분입니다. 부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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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 by 니노치카

by dcdc | 2008/07/24 14:11 | 내가 사랑한 B급-도서 | 트랙백 | 핑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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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다면 풍요로웠다고 대답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풍요의 증거물로는 당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 읽었다는 제 개인적 사건을 꼽아주겠습니다. 네, 작년 7월의 어느 날 읽기 시작한 이 기나긴 시간에 대한 물리학적 고찰을 담은 커다란 이야기를 이제야-마침내 완독하였습니다. 오늘에서야 결국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 more

Commented by 에이프릴 at 2008/07/24 14:21
니노공주라는 호칭을 쓰려면 내게 돈을 내!!!! 적절한 별명이라고 생각함. 덧3보고 ㅋㅋㅋ했음
Commented by dcdc at 2008/07/24 14:24
껒여! 넌 전진을 전스틴이라고 부를 때 돈 내고 부르냐! 덧3이야 뭐 -_-;
Commented by 라임 at 2008/07/24 15:27
난 꽃피는 처녀들에서 포기했음. 아득한 옛 일이지만 몇몇 장면은 아직도 머리에 선하다. 유명한 과자 장면이나 자기 전에 엄마랑 키스하려다 아빠한테 혼나는 장면이라던가..
Commented by 니아브 at 2008/07/24 16:50
이 글에 '프루스트' 보다 '니노공주'가 더 많이 나왔다는거...()
Commented by 근엄자 at 2008/07/24 19:14
하아하아 역시 저의 프루스트땅은 가와이이하고(....)
그냥 휘딱 쓱쓱 읽고나서 나중에 불현듯 접혀있던 과거처럼 기억이 나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Commented by dcdc at 2008/07/24 20:19
라임//너 중딩 땐가 고딩 때 도전하지 않았니. 괴물놈.
니아브님//그게 이 포스팅의 핵심이죠.
근엄자님//문장이 아까워서 그게 안되는군요 ㅎ;
Commented by 니노치카 at 2008/07/24 22:52
안녕하세요? 꽃피는 아가씨 니나예요. dcdc님이 책을 완독하게 되면, 프루스트 낭독회, 프루스트 요약 경연대회를 열 생각입니다. 선물도 준비할께요.
스완네서 한 문장 "질베르트가 어찌나 아름답게 보였던지, 나는 되돌아가서 어깨를 으쓱 추켜세우면서 '참말 묘하게 생겨 먹은 밉상이구나, 보고 있자니 메스껍구나!'하고 외치고 싶었다." 나의 모든 우정을 보내며 당신의 니나.
Commented by dcdc at 2008/07/25 00:56
수많은 아가씨들의 시의에 찬 눈빛을 받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알싸한 기분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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