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파리] 죽어도 끝나지 않는다.

 
 용역일, 불법대출 돈 회수 일을 하는 상훈. 그의 앞에 우연히 여고생 연희가 나타나고 시비가 붙자 상훈은 오른쪽 훅으로 연희를 기절시킨다. 치료비로 술이나 쏘라는 연희. 그렇게 두 사람은 친해진다. 두 사람에게 가정은 폭력의 공간이다. 상훈은 출소한 아버지를 찾아가 폭력을 행사하지만 배다른 누이의 아들을 찾아가 욕설 섞인 애정을 주기도 한다. 연희는 학교도 가지 않으면서 돈 달라고 아우성 치는 남동생과 월남전 후유증으로 정신이 나간 아버지 양쪽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가족은 몸 안의 피를 뽑아내 버려도, 죽어도 끝나지 않는 악몽이다.

 영화는 욕설과 폭력으로 가득합니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모두 약자들의 것입니다. 강자는 욕설과 폭력의 주체가 아닙니다. 그들이 그럴 필요가 있을 때에는 상훈과 같은 용역업자들, 약자들을 고용할 뿐이니까요. 약자는 고맙다는 감사도 미안하다는 사과도 하지 못합니다. 무엇이 자신을 헤치려는 의도인지도 모르고 빚을 졌다가 다시 된통 당할 지도 모른다는 기우 때문입니다. 작품에서 모든 감정의 소통이 '돈'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런 탓입니다. 모든 감정은 그저 '내가 그래도 돈은 줬다'의 어설픈 표현에서 그칩니다.

 약자들의 가정은 그래서 무섭습니다. 그들에게 가족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하지만 가족을 떠날 수는 없습니다. 관성과 돈 때문입니다. 안식의 공간이면서 안식의 공간이 아니기에 악순환은 반복됩니다. 저 저주할, 주먹으로 갈겨버리고 싶은, 칼로 내장을 훑고 싶은 인물이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한 공간 한 세월 같이 할 존재라는 것은 참으로 지옥입니다. [똥파리]는 그 지옥도에 대하여 거칠고 거칠게, 하나의 부정 없는 현실을 그려냅니다.

**좀 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어떤 화해라 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라 할 수 있는 장면이 지나간 후 영화는 지리멸렬하게 이어집니다. 보는 이들은 당혹스러워집니다. 폭력의 주체들은 용서도 화해도 하지 않지만 그 반대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에 처해집니다. 나 오늘 손 씻어. 깡패짓 안 해. 드디어 아르바이트 비를 받았어. 전쟁영화면 얘를 죽이고 싶어 환장했을 때 나오는 장면이구나 했는데 진짜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이 갑작스러운 신파로 이 영화는 다른 영화보다 한 걸음 더 위대해집니다. 거꾸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전형의 전형적인 장면이 끝나고, 새 삶을 살겠다는 상훈은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보다 더 뻔할 수 없는 순간에 뒈집니다. 이 죽음은 희생양의 죽음입니다. 제의의 죽음입니다. 이 죽음으로 욕설과 저주를 내뱉던 인물들은 한 자리에 모여 같이 목 놓아 울고 어느 겨울날 다시 모여 살풋 고기를 구워 먹으며 '저 미성년이라 술 못 마셔요'같은 예의를 차릴 수 있는 자격을 얻습니다.

 위의 이야기에 덧붙이겠습니다. 그 신파가 위대해진 이유는 영화가 그 신파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상훈은 죽고 모든 악몽이 끝났다고 생각할 무렵, 상훈이 피를 다 뽑아버렸다고 믿을 무렵, 연희는 발견합니다. 또 하나의 상훈이라고 해도 좋고, 애초에 상훈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폭력과 욕설과 약자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상훈이 죽고 상훈을 죽여도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말그대로 '죽어도 끝나지 않습니다'. 상훈을 죽인 사람들은 여전히 상훈 그대로입니다. 가족은 영원한 지옥입니다.


덧//
영화 볼 때 많이 힘들었습니다. 김꽃비 양 보느라 정신이 팔려서 감정이입을 못한 장면이 많거든요. 양익준 감독이 김꽃비 무릎베개에 눕는 장면에서는 손을 불끈 쥐고 부러움의 피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직 많이 거친 느낌도 납니다. 저는 그 느낌이 무엇보다 소중한 개성이라고 봅니다만.

덧2//
감독과의 대화 시간에는 위와 다른 식의, 변화와 성찰의 이야기라고 감독님이 말씀하셨지만 이런 곳에서는 감독말 믿는 사람이 바보죠(...). 작품 내의 이미지와 갭이 커서 많이 재밌었습니다 히히. 김꽃비 양도 너무 예뻤...♡ 자중하겠습니다.

덧3//
김꽃비 양에 대한 무조건적인 선호로 보지도 않은 영화를 추천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쉽습니다. 그냥 추천드릴 걸. 영화 참 재밌고 유익합니다. 가족영화제라는 타이틀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라고 봅니다. 3월에 개봉할 예정...인...듯 하니?; 27일 가족영화제에 가서 보시지 못할 분들이라도 그 때 :)

by dcdc | 2008/10/25 11:46 | 내가 사랑한 김 꽃비♡ | 트랙백(2) | 핑백(2)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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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밀피의 정서불안 이글루 at 2008/10/29 09:10

제목 : 영화 (똥파리 / 모스크바 벨기에 / 도쿄)
똥파리 기대는 했지만 (원래 사람들이 애써 무시하는 현실을 은유 속에서 들이대는 영화는 좋아하는 편) 이 정도 완소 영화일 줄은 예상하지 못 했음.. 일단 첫 인상은 폭력으로 점철된 영화인데, 첫인상과 달리 유쾌한 부분도 있고.. 이 영화에서의 폭력(언어적, 육체적)은 감춰야 할 잘못이나 유머를 위해 곁들이로 넣어놓는 그런 반쪽 폭력이 아니라, 폭력이 가지는 커뮤니케이션적인 기능이나 전달되고 또 재생산되는 그 속성을 숨김없이 끊김없이 보여줌으......more

Tracked from 뻔씨네 at 2009/04/04 03:54

제목 : 똥파리-힘찬 날개짓과 함께 장렬히 산화하다.
똥파리! 제목부터 독특한 이 독립영화는 극빈층의 발악할수록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굴레와 핏줄! 그리고 가족의 상처와 치유에 대한 얘기를 한다. 이미 용산 참사 사건에서도 기억되다 시피 이제는 경찰의 비호를 받고 활동을 할 정도로 성장해 버린 합법적인 조폭들을 우리는 용역 깡패 들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경찰들도 엄두를 못내거나 지저분하게 생각하는 일들을 이제는 암묵적인 묵인하에 용역깡패들의 몫으로 떠넘기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감독은 주인......more

Linked at dcdc의 잡담창고 : 200.. at 2008/12/30 02:31

... 없는데 리스트를 꼽으면서 포스팅 수 채우기 뭐해서 ^^; 그냥 2008년 영화관 들락거리면서 했던 잡상들이나 옮겨 적을까 합니다. 어차피 올해 최고의 영화는 김꽃비 양 주연 [똥파리]인데 굳이 다섯개를 꼽을 필요가...아닙니다.  어쨌든 요번 2008년 가장 집중한 문제는 연초 씨네21 등지에서 계속 화두가 되었던, '헐리웃이 변했는가?'입니다. 오 ... more

Linked at dcdc의 잡담창고 : [똥파.. at 2009/04/08 02:51

... 생과 월남전 후유증으로 정신이 나간 아버지 양쪽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가족은 몸 안의 피를 뽑아내 버려도, 죽어도 끝나지 않는 악몽이다. 0.  작품에 대해서는 http://dcdc.egloos.com/4691443에서 이야기한 바 있으니 잡담 위주로 가겠습니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시사회 당첨된 친구 덕에 김꽃비양♡을 한번 더 보고 왔기도 하고, 곧 개봉도 하고 ... more

Commented by 밀피 at 2008/10/26 11:37
내일자 예약 완료했습니다 :) [두근 세근] 자리 널널하네요 다른 분들도 어서~
Commented by dcdc at 2008/10/26 17:11
재밌게 보고 오셔요 ^^!
Commented by 밀피 at 2008/10/28 01:34
전 이렇게 솔직하고 꾸밈 없는 영화는 첨 봤습니다. (욕하고 팬다고 이런 표현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욕이나 폭력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대놓고 보여주면서도 그게 조폭 영화 등에서 볼 수 있는 싸구려 웃음 또는 멋부리기가아니라, 그 실제로 존재하는 폭력이 가족과 남에게 대물림되고 연속되는 것까지 보여주는... (연쇄되는 것은 폭력 뿐이 아니라 '사랑'도 있지만..) 그 폭력의 의미와 무게를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는 올곧은 영화였습니다. 제가 본 영화 중에서는 최고 완소급. 그리고 김꽃비님은 여신이었습니다. (강한 여신!!) dcdc님 덕에 멋진 영화와 감독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 [상관 없지만 간 김에 본 모스크바 벨기에도 좋았어요. 이건 흐뭇하게 볼 수 있는 영화에 가깝지만]
Commented by dcdc at 2008/10/28 21:49
이번 가족영화제는 정말이지 우르르 놓쳐서 OTL 재밌게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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