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01월 14일
[2월의 곤란]
나란 사람은 다시 태어난다면 개구리나 뱀 뭐 이런 게 좋을 것 같다. 겨울이 되면 동면해서 푹 쉬게. 뭐 지금도 방 안에 틀어박혀 컴퓨터만 하고 있으니 별로 다른 것도 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 곰도 동면을 하긴 하지만 dcdc는내세에곰돌이가되고싶어요뿌우'ㅅ'☆ 이럴 나이는 지났으니까 관둔다. 보다 젊고 풋풋하고 파릇파릇한 아이들이 나 곰 할래! 이렇게 내버려 두는 것이 나잇살 맞게 행동하는 일 같다. 어차피 겨울이 되면 동면하고 싶어진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어린애 같지만. 어쨌든 개구리나 뱀. 땅굴에 쳐박혀서 따뜻한 춘삼월 꽃 피는 계절만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
추위는 내게 도무지-도대체- 견딜 수 없는 비극이다. 나는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엄마랑 하와이 가서 별장 하나 지을 거라니까. 돈 적게 벌면 남해쪽에 고시원이라도 잡던가 할 거고. 그렇잖아도 운동 부족인 것이 겨울만 되면 춥다는 핑계로 더 밖에 나지 않으니 몸은 나빠지고, 몸은 나빠지니 추위는 더 잘 타게 되고, 추위를 더 잘 타게 되니 밖은 더더욱 나가지 않고...총체적 난국에 사면초가다. 아, 겨울이 되면 가장 싫은 것은 이거다. 걸어다니면서 만화책을 못본다. 손이 시려서 페이지 넘길 때마다 아프다.
운수랄지 재수랄지 바이오리듬이랄지 뭐 그런 것들도 겨울이 되면 항상 나빠진다. 추위와 함께 악운도 찾아온달까. 내 최악의 추억은 항상 겨울에 집중되어 있고 2학기 점수는 언제나 1학기 점수보다 낮았다. 여자한테 차여도 항상 겨울에 차인 기억밖에 없다. 그렇다고 여름에 잘 된 기억이 있는 것도 아니다만 흥. 어쨌든 여름에 하는 시네바캉스는 보고 싶은 영화든 보기 싫은 영화든 일단 거진 챙기는데 겨울에 하는 시네마떼끄 친구들의 영화제는 내가 흥미를 잃은건지 영화선정을 다양한 사람이 해서 그런지 보러 갈 마음도 들지 않는다.
2월이 되면 그래서 싱숭생숭해진다. 오, 봄이구나. 이제야 이 겨울이 끝이 보이는구나. 걸어다니면서 만화책 볼 수 있겠구나 뭐 이런 생각에 가슴이 부푸는 것이다. 하지만 가슴이 부푼다 손 쳐도 이미 몸은 기진맥진, 일을 벌이고 싶어도 힘이 딸리고 하던거 마저 하려고 해도 3월에 하지 뭐 이런 생각이나 한다. 몸은 가장 지치지만 마음만은 활발한, 제일 힘든 주간이랄까. 2월은 희망 때문에 가혹하다. 그러다보니 늦게까지 뭔 일을 벌이다 잠이나 퍼자게 되고, 하루 열시간 수면에 일어나면 그림자가 짧아지지 않고 길어진다.
잠이 길어지니 꿈도 늘어난다. 나름 전 작가지망생이라 꿈을 꾸는 것을 좋아하는데, 가장 기발한 이야기는 언제나 꿈이기 때문이다. 물론 하도 허황되거나 서사가 엉망이거나 등장인물이 뒤죽박죽에 아침 다 먹고 점심 준비할 때쯤이면 머리 속에서 다 소화된 똥같은 이야기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글로 옮긴 적은 드물지만 말이다. 그나마 특기할만한 꿈은 여자한테 고백했다 차인 다음 날 꾸었던, 고백했던 그 여자랑 뽀뽀하는 꿈이라던가 찰리 카우프만-이라고 주장하는 뚱보-한테 영화강의를 듣는 꿈이라던가 성룡이 나와서 입에서 불을 뿜는 꿈 정도다.
요번 2월에도 좀 이상한 꿈을 꾸었는데 내용은 이렇다. 내가 쌍문역 앞 편의점에서 캔커피 하나 사마시고 헤드셋 끼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좀 허름한 주택가 쪽 루트를 골라서 돌아오고 있었다. 그쪽 길은 좀 어두컴컴하고 다니는 사람들도 이상한 사람들이라 열번에 세번은 노상방뇨를 하는 아저씨들을 만난다. 나는 그쪽 길을 걸을 때는 헤드셋을 아예 벗거나 음악을 끄거나 그러는데, 이상하게 그 길만 걸었다 하면 깜짝깜짝 놀랄 일이 생겨서 그렇다. 전에도 어떤 아가씨가 '이봐요, 내 말 들려요?!'하고 역성을 내길래 귀신을 만난갑다-싶어 눈물 핑 돈 적도 있었다. (알고보니 그 아가씨가 전화 받을 때 성깔이 폭발했던 것이었다만)
어쨌든 그렇게 그 길을 걷는데 하늘에서 홍대 C동 8층 식당 넓이만한 핫핑크 빛 원반이 내 위로 날아와 빙빙 도는 것이었다. 허 참, 나는 꼭 이 길을 걸을 때마다 별 꼴을 다 본다니까 싶어 멍하니 바라보는데 내 몸이 바다에 빠졌다 부력으로 뜨는 것처럼 그 원반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라? 내 캔커피? 싶다보니 너무나 새하얀 빛이 쌍문동 일대를 감싸고, 나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꿈도 참 스펙타클하다 싶어서 다시 잠을 청하려 하는데 그 광경이 내 방 침대 안 이불이 아니었다. 그곳은 내가 무슨 TTL 광고(너무 옛날 얘긴가?) 찍으러 왔나 싶을 정도로, 임수정이 모델이면 딱 좋을 정도로 화사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내 앞에는 케로로 하사랑 비슷하게 생긴 외계인 두 명이 서있었다.
"안녕하세요. 저 실례지만 별 거는 아니고 설문조사 몇가지만 부탁드릴려고요. 시간 괜찮으시면 설문 참가 좀 해주실래요? 진짜 잠깐이면 다 끝나는데. 다 하시면 소원도 하나 들어드려요!"
아 그럴게요. 나는 그 개구리 두마리가 하도 사근사근하기에 그만 설문지와 펜을 받아들었다. 걔네들도 모나미 펜을 주는 것이 역시나 전국민의 모나미다 싶었다. 다만 설문지는 NDSL 두뇌게임처럼 스크린터치에 표시를 하면 다음 질문이 나오는 식이었다. 요즘은 설문하는 쪽도 돈이 썩어나. 설문내용은 별 것 아니었다. 나는 이 땅에 끝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NO. 나는 태양이 지구를 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NO. 나는 지구가 원형궤도를 그리며 태양을 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NO. 뭐 이런 식의 간단한 상식문제였다. 하지만 뒤로 갈 수록 문제가 어려워져서, 삶과 우주, 그리고 그 모든 것에 대한 답까지 밖에 적지 못하고 손을 떼고 말았다.
"다 작성하셨어요? 네, 감사합니다. 저희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소원은 어떤 것이 좋으시겠어요? 뭐든 들어드릴테니까 부담 갖지 말고 말씀하세요."
개구리들은 끝까지 부드러운 태도로 나를 대했다. 이녀석들 텔레비전에서 볼 때랑은 많이 다른 걸? 그때 나는 많이 추웠고, 우주선에 올라 탈 때 캔커피를 떨어뜨려서 속이 많이 상했으며, 개구리들이 눈 앞에 있었고, 무엇보다 2월이었다. 나는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아무렇게나 이야기를 하고 우주선을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개구리들은 그 소원은 지구 역사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소원이라 다른 사람들의 기억과 지구 상 존재하는 모든 기록들을 수정해야 하는데 괜찮겠냐고 물었다. 네네네, 뭐 어때요. 그냥 그 소원으로 할 테니까 대충 해주세요. 뭐 이런 내용의 꿈이었다.
어쨌든 이 황당하지만 나름 조리있는 꿈은 결국 꿈이었을 뿐인지라 이 싱숭생숭하고 몸은 축나는데 마음만 급한 2월은 여전히 30일까지나 있으며, 4년에 한번은 31일까지나 있기까지나 하니, 3월이 빨리 오도록 2월을 이틀만 줄여달라는 내 소원 중의 소원은 그냥 이뤄질 수 없는 꿈같은 이야기로만 남아있는 것이다. 지구의 공전궤도가 어떻든 사람들 기억이 어떻든 인류역사가 어떻든 나는 어서 빨리 2월이 끝나고 3월이 와서 동면에서 깨어나는 개구락지마냥 홍대 거리를 팔딱팔딱 뛰어다니고 싶을 뿐인데 말이다. 요즘 하도 정신이 없어서 '2월을 소재로 거짓말하기'라는-존경해마지 않는 February님네 블로그 이벤트도 기한을 놓쳤는데, 늦게나마 참가하고 싶어도 이 허무맹랑한 꿈 이야기말고는 2월에 딱히 남는 기억도 없을 뿐더러 더군다나 이 꿈을 꾼 사실은 거짓말조차 아니니 이벤트 참가는 물건너 갔나 보다. 거 참, 2월은 아직 한창이다.
# by | 2005/01/14 00:00 | 글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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