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01일
[애니 홀] anything else?

제가 애니 홀이라고 부르는 여자가 있어요. 물론 본인 앞에서는 아니고, 술자리에서 그 친구 이야기 할 때 본명으로 부르기 싫어서 애니 홀이라고 지칭하지요. 그 친구를 애니 홀이라고 부르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어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뻔한 답들의 리스트가 그 이유고요. 제 인생에서 참 낯부끄러운 장면의 꽤나 많은 원인이 되었던 친구라는 것도 물론 포함된답니다. 다만 그 친구는 절 좋아했던 적이 없다는 것은 그 리스트의 예외가 될 부분이겠지요. 아휴.
우디 알렌을 좋아한다, 라고 말하면 "나 [애니 홀] 봤어요. 좋은 작품이에요."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면 전 꼭 "그렇죠. 저는 그 작품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요."라고 대답해요. 맞아요. 저는 우디 알렌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뮤즈에게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고백하기 위한 작품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저랑 하는 짓이 너무 똑같아서 짜증나거든요.
저는 우디 알렌이 사랑에 빠졌던 여성들도 싫어해요. 다이앤 키튼, 미아 패로우, 스칼렛 요한슨...우디 알렌은 그녀들을 신격화하며-거기다 영감님은 자기가 신격화하고 있다는 걸 똑똑히 알고 있죠- 그녀들이 완벽한 그의 짝이 아님에도 세상의 모든 것인 듯 마냥 빠져들지요-물론 영감님은 완벽한 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알아요-. 보면 볼 수록 기시감이 든다니까요. 가장 한심한 날 모든 일을 망치고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볼 때 같은 기시감이요.
얼마 전 영화처럼 애니 홀을 만났어요-여기서 영화같다는 수식은 운명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애니 홀] 결말과 비슷하다는 의미랍니다 하하-. 꿈을 꿨거든요. 전 지금 나이 그대로 고등학교에 돌아갔고, 모교는 남녀공학으로 바뀌었고, 제가 갖지 못했던-놓쳐버렸던 수많은 것들로 가득했어요. 제 옆자리에는 애니 홀이 있었고, 망측하게도 제가 그 친구 볼을 쓰다듬었는데 분필가루가 묻었던 그런 꿈이었어요. 그날 학교 가는 길에 그 친구한테 연락을 했죠. 만나자고.
얼마나 멋진 여자였는지, 얼마나 재밌는 사람이었는지. 뭐 시간이 흐르고 보니 정말이지 내가 무슨 깡으로 이 여자에게 덤벼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저와 거리가 있다는 걸 느끼기도 했지요. 이제는 저도 [애니씽 엘스]의 도벨처럼 좀 여유가 생긴 것일 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니 아주 잠시만은 [애니 홀]이 재밌는 영화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달걀이 필요해질 그 날까지는요. 라디다, 라디다...
덧//
귀찮아서 블로그 쉬었습니다. 추석 연휴 뒤부터는 바빠서 쉴 것 같아요 :)
덧2//
전에 쓴 [애니씽 엘스] 첫번째.
전에 쓴 [애니씽 엘스]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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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 2009/10/01 22:40 | 내가 사랑한 우디 앨런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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