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 홀] anything else?

 
 뉴욕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신경과민증의 앨비는 가수 지망생인 애니를 보고 한눈에 반하고, 애니 또한 앨비에게 관심을 가진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점점 다가가고 머지않아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완벽하기만 하던 서로에게서 단점을 보게 되고, 관계는 삐걱대기 시작한다. 50회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수상에 빛나는 우디 알렌 대표작 중의 대표작. 우디 알렌 스스로 이 작품을 전환점이라고 불렀다.-시네마테크 부산에서 추가.

 제가 애니 홀이라고 부르는 여자가 있어요. 물론 본인 앞에서는 아니고, 술자리에서 그 친구 이야기 할 때 본명으로 부르기 싫어서 애니 홀이라고 지칭하지요. 그 친구를 애니 홀이라고 부르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어요.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뻔한 답들의 리스트가 그 이유고요. 제 인생에서 참 낯부끄러운 장면의 꽤나 많은 원인이 되었던 친구라는 것도 물론 포함된답니다. 다만 그 친구는 절 좋아했던 적이 없다는 것은 그 리스트의 예외가 될 부분이겠지요. 아휴.

 우디 알렌을 좋아한다, 라고 말하면 "나 [애니 홀] 봤어요. 좋은 작품이에요."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면 전 꼭 "그렇죠. 저는 그 작품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요."라고 대답해요. 맞아요. 저는 우디 알렌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뮤즈에게 '나는 너를 사랑해'라고 고백하기 위한 작품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저랑 하는 짓이 너무 똑같아서 짜증나거든요.

 저는 우디 알렌이 사랑에 빠졌던 여성들도 싫어해요. 다이앤 키튼, 미아 패로우, 스칼렛 요한슨...우디 알렌은 그녀들을 신격화하며-거기다 영감님은 자기가 신격화하고 있다는 걸 똑똑히 알고 있죠- 그녀들이 완벽한 그의 짝이 아님에도 세상의 모든 것인 듯 마냥 빠져들지요-물론 영감님은 완벽한 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알아요-. 보면 볼 수록 기시감이 든다니까요. 가장 한심한 날 모든 일을 망치고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볼 때 같은 기시감이요.

 얼마 전 영화처럼 애니 홀을 만났어요-여기서 영화같다는 수식은 운명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애니 홀] 결말과 비슷하다는 의미랍니다 하하-. 꿈을 꿨거든요. 전 지금 나이 그대로 고등학교에 돌아갔고, 모교는 남녀공학으로 바뀌었고, 제가 갖지 못했던-놓쳐버렸던 수많은 것들로 가득했어요. 제 옆자리에는 애니 홀이 있었고, 망측하게도 제가 그 친구 볼을 쓰다듬었는데 분필가루가 묻었던 그런 꿈이었어요. 그날 학교 가는 길에 그 친구한테 연락을 했죠. 만나자고.

 얼마나 멋진 여자였는지, 얼마나 재밌는 사람이었는지. 뭐 시간이 흐르고 보니 정말이지 내가 무슨 깡으로 이 여자에게 덤벼들었을까 싶을 정도로 저와 거리가 있다는 걸 느끼기도 했지요. 이제는 저도 [애니씽 엘스]의 도벨처럼 좀 여유가 생긴 것일 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니 아주 잠시만은 [애니 홀]이 재밌는 영화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달걀이 필요해질 그 날까지는요. 라디다, 라디다...


덧//
귀찮아서 블로그 쉬었습니다. 추석 연휴 뒤부터는 바빠서 쉴 것 같아요 :)

덧2//
전에 쓴 [애니씽 엘스] 첫번째.
전에 쓴 [애니씽 엘스] 두번째.

by dcdc | 2009/10/01 22:40 | 내가 사랑한 우디 앨런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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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highenough at 2009/10/02 13:25
후후.. 나는 개그적으로 참 좋아하지..
Commented by dcdc at 2009/10/02 13:26
난 도무지 웃을 수가 없더라니까. 뭐 이제 한동안은 웃으며 볼 수 있겠지만 하하
Commented by highenough at 2009/10/02 13:33
테니스 치고 나와서 차타고 시내로 돌아갈 때까지의 대화내용이 항상 재밌어ㅋ
Commented by dcdc at 2009/10/02 13:35
내가 가장 좋아하면서 싫어하는 부분은 마지막 첫 연극 연습장면과 그 뒤에 이어지는 방백이야.
Commented by highenough at 2009/10/02 13:41
아. 그리고 나는 그 브루클린의 롤러코스터.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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