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배명훈

 

[타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명훈.

 
 674층 높이에 인구 50만을 수용하는 타워는 어느 나라의 수도에 위치해 있다. '지상 최대의 건축물' 타이틀을 놓고 두바이의 초고층 빌딩과 경쟁하는 과정에서설계 변경만 20회, 냉전 시절의 군비 다툼을 연상시킨 경쟁의 결과, 최초 설립자들은 양쪽 모두 파산했다. 착곡 41개월 만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기네스북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고, 완공 5주년 기념일에는 특별 투자구역 지위에서 특별 자치구역 지위로 격상, 이듬해 역사상 최초의 타워 도시국가로서 대내외적인 주권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뒷날개에서.

 '타워', 즉 '빈스토크'의 정치지리학적 위상은 서울이라는 한 도시에 가깝습니다. 물론 서울이라는 도시가 타워처럼 잘 나가는 동네는 결코 아니지만요. 그럼에도 이 좁다면 좁고 넓으면 넓은 '타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사고들은 하나같이 우리네 고통이요 우리네 웃음에 SF적 상상력을 더한 무엇이기에 '타워'의 정치지리학적 위상은 서울로 봄이 좋겠지요. 수평수직(좌우)간의 대립, 시대에 역행해 벌어지는 공성전 시위, 대놓고 진행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 etc, etc...

  소설보다도 더 지독한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인터뷰에서의 배명훈의 화답대로 유머 감각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이 창조한 가상의 공간 속에서 수많은 은유와 풍자로 마주한 현 시대의 문제를 핀포인트로 저격하는, 그러면서도 한줌의 유머를 결코 놓지 않는 배명훈이 절실한 것이지요. 현실에서 벌어지는 적나라한 치태에 차분하게 분노하며 동시에 미소도 잃지 않는 배명훈의 글쓰기 방식은 이런 거지같은 시대일 수록 더 빛이 납니다.

 물론 [타워]는 명절마다 기념일마다 양주 선물하느라 바쁜 직장인 관례를 술병의 이동경로를 추적하여 자연스레 권력도의 분포 지도를 파악해낸다-와 같은 기발하면서도 학술적인 지반을 깔고 있는 배명훈 특유의 SF적 상상력만으로도, 언제 어떻게 읽더라도 평탄하게 술술 넘어가는 문장력만으로도 꼭 읽고 넘어가야 할 SF의 보물입니다만, 그래도 가장 가렵고 급박하게 경련이 이는 부분을 탁월하게 짚어내는 능력이야말로 배명훈이라는 작가를 만나는 것에 있어 가장 고마운 부분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겠지요.


덧//
과학동아에 실렸던 [스마트D]에 배명훈님 싸인도 받았지롱요!

덧2//
에휴 그런데 나는 또 똥만 싸고 있고(...)

by dcdc | 2009/07/02 17:12 | 내가 사랑한 B급-도서 | 트랙백 | 덧글(12)

[바이센터니얼 챈슬러] 이천박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로하며.

 

 새로 집권한 총통 보기가 역겨워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동면에 들어가기로 한 부부. 깨어나면 정권이 바뀌어 있을 줄 알았는데…, 배명훈의〈바이센터니얼 챈슬러>는 정치의 계절, 총선 시즌을 앞둔 장르 팬들을 위한 우화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한 이천박 정권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아주 짤막한, 하지만 거대한 농담.-[판타스틱] 소개글에 덧붙임.

 렛츠리뷰 당첨으로 [판타스틱] 5월호가 지금 모니터 옆에 놓여있습니다만 ^^; 아니, 4월호 리뷰를 해야 되는 줄 알고 책 도착하는 날까지 [바이센터니얼 챈슬러]의 감상을 미뤄둔 제 입장이 뭐가 됩니까! 히히 뭐긴 뭐겠어요 대박 터진거지(...). 어쨌든 [판타스틱] 5월호 리뷰에 앞서 4월호에 실린 배명훈의 [바이센터니얼 챈슬러]에 대한 잡담을 좀 하겠습니다. 5월호 리뷰는 천천히 :)

 [바이센터니얼 챈슬러]의 소재는 간단합니다. '어휴, 자고 일어나면 저 새끼가 사라져 있었음 좋겠다!' 여기서 저 새끼가 어느 새낀지야 다 아는 새끼니 음음. 이런 짤막한 농담은 SF의 거대한 상상력과 결합되어 거대한 서사로 진화합니다. 새로 당선된 애가 싫어-> 옆에 인공동면기계가 있네?->좋아 그 놈 임기 끝날 때까지 자자.

 단순한 도피성 농담이 SF의 세계관을 통해 현실로 자리매김을, 아니 현실을 뛰어넘는 과잉된 모습으로 뒤바뀌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농담이 현실에 우뚝 일어설 때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경악에 가까운 희열입니다. 도피라고 탓하지는 마세요. 이미 우리네 현실은-그러니까 뉴스채널에서 나오는 개소리들은- 우리에게 희열에 가까운 경악을 강요하고 있잖아요.

 더욱이 [바이센터니얼 챈슬러]의 도피는 일사천리 손 쉬운 '아 거 영 X같으면 이민 가지 뭐' 수준처럼 만만하지도 않습니다. '거리로 나가 화염병을 던지자!'하는 식의 선동도 아니구요. 이 소설은 세기의 차원을 넘나드는 거대한 농담에 불과합니다. 이천박시대 싸워나가야 할 우리 이웃들에게 무엇보다 더 절실한 그것. [바이센터니얼 챈슬러]은 이 삭막한 시대에 단비 같은 농담입니다 :)


덧//
어찌 블로그가 안티천박 블로그로 바뀌는 느낌이 -_-;

덧2//
5월호 이야기는 없지만 렛츠리뷰에 올려놓긴 하겠습니다. 물론 5월호 내용도 쓸겁니다 :)


렛츠리뷰

by dcdc | 2008/05/11 22:09 | 내가 사랑한 B급-도서 | 트랙백 | 덧글(15)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발칙함이 아쉬운 한국 청소년 SF 단편집.

 

 미래를 열어갈 10대에 바치는 창작 과학소설선. 느닷없이 성적이 오르는 친구들, 아무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소녀, 노벨상을 탄 최초의 한국인 과학자 등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기발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 8편이 수록되어 있다. 김보영 - 마지막 늑대/ 듀 나 - 가말록의 탈출/ 박성환 -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배명훈 - 엄마의 설명력/ 송경아 - 소용돌이 이지문 - 개인적 동기/ 이 현 - 로스웰 주의보/ 정소연 - 비거스렁이 수록.-다음 책에서 수정

 SF는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저의 그네들을 향한 애정은 아마 이들의 발칙함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온갖 관념과 아이러니를 가지고 -그것도 우주적 스케일로-장난 치는 모습은 분명 사랑할 가치가 있습니다. 반할 수 밖에 없지요. 그 어느 장르에서도 어쩜 그리 뻔뻔하게 42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어쨌든 그런 기대감에 부풀어 읽은 것이 이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이지만, 음...아쉽습니다 ㅠ_ㅠ

 물론 SF적 상상력의 틀이 제 취향에 고스란히 들어맞아야 한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만. 이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의 단편들은 대부분 상상력의 기발함이나 위트있는 역설보다는 과학적, 환상적 소재 쪽에만 치우쳐 있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10대를 위한 SF단편집'이라는 멋진 부제가 '발칙함', '젊음'보다는 '건전함', '모범'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해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특히나 외계와의 만남이라는 테마가 단편집 하나에서 보기엔 꽤 많은 수가 들어가 있는데, 여기서 이 테마가 어떤 변주보다는 한국 청소년들의 꽉 막힌 일상의 근원지-해방구로 작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은 불만입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는 발랄한 센스의 제목에도 불구하고 '외계인들의 침략음모로, 아이들이 (수능 잘 치게)개조 당한다' 정도의 큰 틀을 벗어나지 못하며 정치적으로 올바르려 노력하는 한계가 드러납니다.

 그래도 [스마트 D]로 제 하트를 사로잡았던(...) 배명훈 작가님의 [엄마의 설명력]은 음모론과 학문의 자유, 입양아와 같은 자칫 진중해 질 수 있는 주제를 쉬운 구어체와 익숙한 솜씨의 농담, 과학적 뻥으로 편하게 버무려 놓는 솜씨가 참으로 맛깔납니다. [스마트 D]처럼 하나의 충격 정도는 아니더라도 읽는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는 수작이며 단편 하나로 책 한권 값을 합니다. 앞으로 이런 유쾌한 SF가 한국에서-그리고 또 우리 젊은 청춘을 위한 SF가 더욱 많이 등장하길 빕니다 :)


덧//
그러니까 누가 [2014 뽁뽁이 대량학살사건에 대한 보고서] 좀 책으로 내달라능
에 뭐 이 놈이야말로 매너리즘(+허영, 거품, 망상)으로 가득 찬 녀석이지요(...)

덧2//
투정 잔뜩 부렸지만 역시 SF는 즐겁습니다 ㅠ_ㅠ

by dcdc | 2008/04/08 02:28 | 내가 사랑한 B급-도서 | 트랙백 | 덧글(5)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