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7월 02일
[타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명훈.

'타워', 즉 '빈스토크'의 정치지리학적 위상은 서울이라는 한 도시에 가깝습니다. 물론 서울이라는 도시가 타워처럼 잘 나가는 동네는 결코 아니지만요. 그럼에도 이 좁다면 좁고 넓으면 넓은 '타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사고들은 하나같이 우리네 고통이요 우리네 웃음에 SF적 상상력을 더한 무엇이기에 '타워'의 정치지리학적 위상은 서울로 봄이 좋겠지요. 수평수직(좌우)간의 대립, 시대에 역행해 벌어지는 공성전 시위, 대놓고 진행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 etc, etc...
소설보다도 더 지독한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인터뷰에서의 배명훈의 화답대로 유머 감각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이 창조한 가상의 공간 속에서 수많은 은유와 풍자로 마주한 현 시대의 문제를 핀포인트로 저격하는, 그러면서도 한줌의 유머를 결코 놓지 않는 배명훈이 절실한 것이지요. 현실에서 벌어지는 적나라한 치태에 차분하게 분노하며 동시에 미소도 잃지 않는 배명훈의 글쓰기 방식은 이런 거지같은 시대일 수록 더 빛이 납니다.
물론 [타워]는 명절마다 기념일마다 양주 선물하느라 바쁜 직장인 관례를 술병의 이동경로를 추적하여 자연스레 권력도의 분포 지도를 파악해낸다-와 같은 기발하면서도 학술적인 지반을 깔고 있는 배명훈 특유의 SF적 상상력만으로도, 언제 어떻게 읽더라도 평탄하게 술술 넘어가는 문장력만으로도 꼭 읽고 넘어가야 할 SF의 보물입니다만, 그래도 가장 가렵고 급박하게 경련이 이는 부분을 탁월하게 짚어내는 능력이야말로 배명훈이라는 작가를 만나는 것에 있어 가장 고마운 부분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겠지요.
덧//
전 과학동아에 실렸던 [스마트D]에 배명훈님 싸인도 받았지롱요!
덧2//
에휴 그런데 나는 또 똥만 싸고 있고(...)
# by | 2009/07/02 17:12 | 내가 사랑한 B급-도서 | 트랙백 | 덧글(12)
2007년 11월 13일
릴레이 소설 1~2.
01.전준
때는 2199년 12월의 마지막 날. 그날도 역시 별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내려던 인류는 여태껏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던 한 과학자의 논문 발표로 인해 침묵만을 고수해야 했다. 그는 팔레스타인 소재의 한 지방대학에서 동물언어학을 연구하던 교수였는데, 그의 주장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던지 보통 때 같으면 가타부타 시끄럽게 떠들어댔을 학계나 언론조차도 그 날 하루만큼은 입을 다문 채 아무런 입장을 표명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 과학자가 말하길,
“그간 우리 인류는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 칭하며 자신이 온갖 생명의 정점에 서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 제가 속해 있는 과학교수학회가 지난 5년 간 시행해온 연구의 결과를 정리한 이 논문을 통해 저희는 이제 우리가 더 이상 그러한 자만심을 접어야만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또한 이 논문은 그것을 증명할 명명백백한 증거를 담고 있습니다.”
그의 놀라운, 하지만 몇몇에겐 비웃음을 사고 말았던 예고 뒤에 이어진 주장을 들어보면 이렇다.
“우리의 지난 5년간은 놀라움의 연속이었습니다. 우선 제일 중요한 것부터 툭 까놓고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지구상에 만물의 영장이라 칭할만한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바퀴벌레이며, 인간이라 칭해진 개체 이외의 모든 생명은 이미 바퀴벌레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을 알아냈습니다. 심지어 식물까지도 말이죠! 저희 학회는 이번 연구를 시행하면서 바퀴벌레와 대화를 가능하도록 하는 장치를 설계, 개발하는데 성공하였고 저희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한 증거자료로써 그들과의 대화를 담은 영상과 그에 덧붙여 증인 아니, 증충(證蟲)이신 바퀴벌레 대표 타이어씨를 이곳에 모셨습니다. 우선 영상부터 보시겠습니다.”
처음 그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이런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교수들의 이야기를 듣기위해 힘들여 이곳까지 오는 것이 아니었다고 웅성 웅성거리며 인상을 쓰던 기자들과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인사들은 그 교수들이 준비한 영상을 보고나서는 그만 입을 다물어버렸다. 영상 안의 교수들은 엄청난 수의 바퀴벌레들과 대화와 토론을 하고 있었다. 바퀴벌레를 통한 동물들과의 대화 역시 영상 속에선 당연한 듯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심지어 인간과 동물들 사이에 공정한 룰로 진행되는 놀이도 행해지고 있었다. 놀라움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영상이 끝나고 바퀴벌레 한 마리가 강연을 하기위해 쪼르르 책상 위에 올라왔을 때, 참석자들은 아까까지 굳게 다물었던 입을 이제는 최대한 크게 벌려야만 했다. 교수들은 그를 부를 땐 타이어씨라고 부르면 된다고 했다. 개발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통역기는 참으로 유창한 솜씨로 영어를 지껄여 바퀴벌레, 아니 타이어씨의 말을 통역해 나갔다. 그 당시에 책상위에 놓인 자그마한 방석위에 올라 내뱉기 시작한 타이어씨의 이야기들을 글로 옮겨보자면 이렇다.
“아, 아, ...음.. 잘되는구먼. 안녕들 하시오, 인간여러분들? 내 이름은 버그 드 타이어라고 하오. 그냥 대충들 줄여서 타이어라고들 부르시오. 하하, 이 거참. 내가 살다 살다 인간들하고 대화를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구먼 그래. 음... 그런데 이거 참 미안한 말이지만 거, 입들 좀 다무시구랴. 입 냄새 때문에 내 더듬이가 따끔거려서 말이오. 흠흠, 뭐 어찌됐든. 솔직히 말해서 당신들이 이렇게 우리들과 대대적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날이 이렇게까지 빨리 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소. 우리들은 당신들의 ‘과학’이라는 것이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참 그 기형적인 발전만큼이나 놀라운 일이지 않나 싶소. 뭐 어찌되었든, 부탁받은 일이 있으니 몇 가지만 빨리 말하고 나는 집에 가서 목욕이나 해야겠소.”
목욕! 목욕이라니!! 좌중들 중 몇몇이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비웃음이라기보다 황당함을 표현하는 웃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타이어 씨도 예상했다는 듯 피식 웃고는 말을 이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음... 뭐였지? 바, 바 뭐더라? 아! 바퀴벌레!! 바퀴벌레가 맞소, mr.기어? “
예의 연구를 발표하던 교수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기어 씨의 대답을 확인한 타이어 씨는 몸을 돌려 다시 말을 시작했다.
“그렇군. 뭐, 우리가 스스로를 칭하는 말이 당신들과 같진 않은데다가 당신들이 사용하는 우리이름의 뜻도 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당신들이 편하도록 우선은 우리를 바퀴벌레라고 칭하겠소. 아까 하던 말을 이어서 하자면, 사실 우리 바퀴벌레들과 당신네들 인간간의 소통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니오. 하지만, 그 수는 온 역사를 통틀어 고작 200명 정도? 사실은 그에도 미치지 못하오. 그래도 최소한 한, 두 명 정도는 그 사실을 다른 이들에게 말할 줄 알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것이 알려졌던 적은 한 번도 없는 듯했소. 뭐, 그 수가 아주 적었기도 했지만 왠지 모르게 우리와 대화를 나누던 자들은 우리와의 대화 사실을 극도로 밝히기 꺼려하는 듯 보였소. 사실 우리는 다른 이들과도 대화를 나눠보고 싶었는데 말이오. 각설하고, 그들이 우리와 대화를 나눈 방식은 꽤 다양했었소. 순전히 뇌에서 나오는 알파파를 이용해 뇌로 직접 대화를 걸었던 방식이 가장 많았고, 동물이나 식물을 통해 통역을 받은 경우도 꽤있었지만, 가장 특이했던 경우를 한 가지 들자면 어느 조각가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듯싶소. 그는 이탈리아인이었는데, 우리의 대화는 그가 나무를 조각해 우리에게 보여주면 우리가 흰개미들에게 부탁해 나무를 다른 모양으로 깎아 내는 식이었소. 물론 세세한 의사소통은 불가능했었지만 말이오. 덧붙여서 대화를 나누던 자들 중에 당신들이 가장 잘 알만한 자들을 들어보자면... 음... 아! 예수나, 부처를 들 수 있겠군! 그들은 온 역사를 통틀어서도 우리와 가장 친했던 친구였고, 소중한 존재였소. 우리는 서로에게 정신적, 물질적 도움을 아끼지 않았었소. 뭐, 그들도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와의 소통 사실을 밝히진 않았지만 말이오.”
발표가 이루어 졌던 3시간동안 참석자중의 그 누구도 주의를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아니, 흐트러뜨릴 수 없었다고 해야할까. 그 발표는 시간이 지날 수 록 경악의 연속이었다. 타이어씨는 이어서 자신들이 예수에게 엄청난 수의 빵과 생선을 구해다 줬던 일, 부처에게 돌이 떨어지는 것을 알려주어 목숨을 구해줬던 일, 바다에 둑을 세웠다가 무너뜨렸다를 반복해 모세를 구해줬던 일, 공자와 바둑을 두고 노자와 소를 몰던 일등 따위를 게워내듯 쏟아 냈다. 그야말로 부정할 수 없는 증거들에게 인간의 자존심이 저항한번 하지 못하고 처참히 무너저버리던 3시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침묵도 잠시. 하루가 지나고 온 지구는 여러 가지 의미들로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혼란. 그렇게 열광과 발악의 뒤섞임으로 23세기 1월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02.석인
김드래곤은 TV를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는 즐겁지 않았다. 지금 보는 방송을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보도되는 '바퀴벌레가 만물의 영장'소식의 진실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김드래곤은 사람들이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도취되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하지만 그렇게 도취된 이들의 반대 축에는 항상 상식을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김드래곤은 결론을 내렸다.
'드디어 그들이 멸종했다.'
전자매체 때문이 아닐까? 몇 세기 전, 전화선을 타고 바보병이 퍼지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등장은 하나의 혁명이었다. 전뇌세계에만 존재하는 자산가치들은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가치들을 순식간에 초월했다. 그와 함께 상식은 전뇌세계의 자산가치에 반비례곡선을 그리며 하강했다. 이미지 범람을 예고한 예언자들이 옳았던 것이다.
현실의 인물보다 CG가 더 선명한 것이 작금의 시대다. 어떠한 증언도 증언으로서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구시대에는 쌔끈하고 멋있는 로봇 몸에 정신이 마음대로 드나들며 인간의 개성이 함몰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 예상은 반만 맞았다. CG기술을 통한 인간외면의 복제로 진실보다 더 강렬한 거짓말이 등장한 것이다.
김드래곤은 희대의 사기극, '만물의 영장-바퀴벌레'설의 진실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이였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사건의 전말을 말할 생각이 1g도 없었다. 이 세상 어느 누가 김씨 가문 둘째 아들이 하는 말을 믿겠는가.
이 거대한 사기극은 무슨 목적을 위해서겠는가? 놀랍게도, 이 사기극은 바로 인류에 대한 하나의 경종이었다. 한 명의 익살스런 교수에 의한 전 지구적 사기극. 그의 동료들은 흔쾌히 그의 헛소리를 도와주기로 결정했다. 이 커다란 개뻥은 그들에게 하나의 유희이자 경고였으며 조소였다.
바퀴벌레가 인간보다 우월하다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조금만 상식이 있다면 금세 진실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을 사람들은 무턱대고 믿었다. 그들의 논문은 모두 엉터리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영상과 번역기만은 공이 많이 들었다. CG기술로 구현한 바퀴벌레와 바퀴벌레의 목소리를 맡을 아르바이트생의 월급 말고는 자금도 그다지 많이 투자되지 않았다. 그들은 한 달 뒤 사건의 전말을 밝히고 현실이 아닌 망상에 빠져 사는 인류를 비웃기로 계획했다.
그리고 김드래곤은 그들의 타의적 조력자였다. 교수들이 김드래곤을 이 사기극에 끌어들인 것은 전적으로 우연이었다. 어쨌든 김드래곤은 이 사기극을 괜찮은 수준의 아르바이트라 생각했고, 그랬기에 이 계획에 찬성하지는 못해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믿음이 있었다. 인간이 그렇게까지는 멍청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고작 하루만에 그 믿음은 산산조각이 났지만 말이다. 사건의 발표 뒤 일어난 엄청난 세계적 규모의 재앙은 그의 믿음을 부수는 것에 일조했다.
김드래곤이 그 계획에 100% 반대한 것은 아니었다. 과학의 발달로 인류 외의 대다수의 생명체는 박물관 전시행이었고, 영특하며 강한 바퀴벌레만이 도시의 이편저편에서 숨어 살아 남았다. 김드래곤은 교수들의 계획은 분명 이러한 인류만을 위한 지구의 변화에 제동을 걸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그는 계획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는 수많은 SF작품들을 떠올렸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로봇>, <2014 뽁뽁이 대량학살사건에 대한 보고서>와 같이 인류의 오만함을 비웃은 고전들. SF는 사라져도 그들이 제기한 문제점은 사라지지 않았다. 한숨을 쉴 수밖에 없다.
김드래곤은 진절머리가 났지만 TV를 끄지 못했다. 그에게는 버튼을 누를 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조용히 몸을 돌려 TV에서 멀어졌다. 교수들이 빨리 이 멍청한 계획을 그만두기를 바라면서. 그는 그들에게 몇 번이고 계획을 그만두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교수들은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렇다. 김드래곤은 바퀴벌레다. 그는 이 사기극에서 타이어의 CG모델링의 모델을 담당하고 있는 바퀴벌레이며 바퀴 김씨 가문에 둘째아들이자 고전SF문학을 사랑하는 순진한 젊은이다. 그는 교수들의 이 허무맹랑한 거짓말이 사실은 진실인 것을 알게 되면 얼마나 가슴 아파할까 걱정했다. 김드래곤은 바퀴벌레 특유의 상냥함을 갖고 있었다.
덧//
릴레이 소설입니다. 아무래도 기한이 있다보니 기한 없을 때보다는 기합이 들어가지를 않는군요;; 후배님과 함께 하는 작업이라 업데이트는 불분명합니다. 그러고보니 아직 제목도 정하지 않았고 형식이나 규칙도 상의하지 못했군요 ^^; 제가 맡은 부분은 2번째 파트. 간만의 SF는 즐겁습니다...ㅠ_ㅠ!!
덧2//
어제 적는 것을 까먹었는데, 전화선을 타고 바보병이 퍼지기 시작했다라는 문장은 명작액션만화 [무적투혼 커프스]에 나온 대사입니다 ^^;
# by | 2007/11/13 02:55 | 쪽글 | 트랙백 | 덧글(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