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그 : SF

 

[수혹성 연대기] 빛으로 충만한 SF만화.

 
 해수면의 상승으로 많은 곳이 물에 잠기고, 달에 사람이 살며, 적도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면 우주에 나갈 수 있는 가까운 미래의 지구. 시간이 흘러도 사람들이 그려내는 사랑스러운 일상의 모습은 변함없이 반복됩니다. 물의 혹성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미래의 오늘을 살고 있는 이들이보내는 따스한 온기를 지금 느껴보지 않으시겠습니까?-[수혹성 연대기] 뒷표지에서.

 블로그 포스팅할 의욕을 오랜만에 가져다 준 만화, 동일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SF 옴니버스 [수혹성 연대기]입니다. 이렇게 꿈과 희망, 사랑으로 가득 찬 만화는 너무 오랜만인지라 반갑기그지 없었답니다. SF적 상상력이나 스케일의 장대함 이런 것들과는 거리가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수혹성 연대기]는 빛을 발해요.

 2권까지 정발 된 내용 중 3편이나 자리를 차지하는 '우주를 보고 걷자' 에피소드의 내용이나 제목처럼 [수혹성 연대기]가 다루는 이야기는 언제나 우주를 올려다보며 옆에 서있는 사랑하는 이의 손을 잡고 삶의 여로를 걸어가는 비일상적 일상의 연대기입니다. 시간적으로는 먼 미래의 언젠가를 다루고 있지만 공간적으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어딘가의 삶의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아요.

 멋진 프로포즈를 고민하는 연인, 천체관측으로 가까워진 친구, 장래를 고민하는 소녀...이런 이야기들은 어느 시대를 배경으로 하더라도 나올 법한 이야기겠지요. (물론 '8일 간의 세계일주'같은 작품은 SF적 상상력이 필수적이지만 주된 형식은 아니니까 패스!) 그러니 [수혹성 연대기]가 갖는 매력은 그 빛으로 충만함, 우주와 나와 같이 걸어주는 사람들에 대한 가득한 사랑에 있는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


덧//
전 크게 거슬리진 않았지만, 남성환타지에 치우친 듯한 느낌이 있어요. 노출도 많고 하하(...) 생각해보니 작품 설명을 거의 안했네...근데 옴니버스에다 확 튀는 이야기가 없어서 OTL

덧2//
정식출간도 되었습니다만 한국판 표지는 그림체 소개가 안 될 것 같아서 일본판 이미지를 올립니다!

by dcdc | 2009/10/02 01:37 | 내가 사랑한 B급-만화 | 트랙백 | 덧글(10)

[타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배명훈.

 
 674층 높이에 인구 50만을 수용하는 타워는 어느 나라의 수도에 위치해 있다. '지상 최대의 건축물' 타이틀을 놓고 두바이의 초고층 빌딩과 경쟁하는 과정에서설계 변경만 20회, 냉전 시절의 군비 다툼을 연상시킨 경쟁의 결과, 최초 설립자들은 양쪽 모두 파산했다. 착곡 41개월 만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으로 기네스북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고, 완공 5주년 기념일에는 특별 투자구역 지위에서 특별 자치구역 지위로 격상, 이듬해 역사상 최초의 타워 도시국가로서 대내외적인 주권을 인정받기에 이르렀다...뒷날개에서.

 '타워', 즉 '빈스토크'의 정치지리학적 위상은 서울이라는 한 도시에 가깝습니다. 물론 서울이라는 도시가 타워처럼 잘 나가는 동네는 결코 아니지만요. 그럼에도 이 좁다면 좁고 넓으면 넓은 '타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사고들은 하나같이 우리네 고통이요 우리네 웃음에 SF적 상상력을 더한 무엇이기에 '타워'의 정치지리학적 위상은 서울로 봄이 좋겠지요. 수평수직(좌우)간의 대립, 시대에 역행해 벌어지는 공성전 시위, 대놓고 진행되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억압, etc, etc...

  소설보다도 더 지독한 현실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인터뷰에서의 배명훈의 화답대로 유머 감각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신이 창조한 가상의 공간 속에서 수많은 은유와 풍자로 마주한 현 시대의 문제를 핀포인트로 저격하는, 그러면서도 한줌의 유머를 결코 놓지 않는 배명훈이 절실한 것이지요. 현실에서 벌어지는 적나라한 치태에 차분하게 분노하며 동시에 미소도 잃지 않는 배명훈의 글쓰기 방식은 이런 거지같은 시대일 수록 더 빛이 납니다.

 물론 [타워]는 명절마다 기념일마다 양주 선물하느라 바쁜 직장인 관례를 술병의 이동경로를 추적하여 자연스레 권력도의 분포 지도를 파악해낸다-와 같은 기발하면서도 학술적인 지반을 깔고 있는 배명훈 특유의 SF적 상상력만으로도, 언제 어떻게 읽더라도 평탄하게 술술 넘어가는 문장력만으로도 꼭 읽고 넘어가야 할 SF의 보물입니다만, 그래도 가장 가렵고 급박하게 경련이 이는 부분을 탁월하게 짚어내는 능력이야말로 배명훈이라는 작가를 만나는 것에 있어 가장 고마운 부분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겠지요.


덧//
과학동아에 실렸던 [스마트D]에 배명훈님 싸인도 받았지롱요!

덧2//
에휴 그런데 나는 또 똥만 싸고 있고(...)

by dcdc | 2009/07/02 17:12 | 내가 사랑한 B급-도서 | 트랙백 | 덧글(12)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발칙함이 아쉬운 한국 청소년 SF 단편집.

 

 미래를 열어갈 10대에 바치는 창작 과학소설선. 느닷없이 성적이 오르는 친구들, 아무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소녀, 노벨상을 탄 최초의 한국인 과학자 등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기발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 8편이 수록되어 있다. 김보영 - 마지막 늑대/ 듀 나 - 가말록의 탈출/ 박성환 -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배명훈 - 엄마의 설명력/ 송경아 - 소용돌이 이지문 - 개인적 동기/ 이 현 - 로스웰 주의보/ 정소연 - 비거스렁이 수록.-다음 책에서 수정

 SF는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저의 그네들을 향한 애정은 아마 이들의 발칙함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온갖 관념과 아이러니를 가지고 -그것도 우주적 스케일로-장난 치는 모습은 분명 사랑할 가치가 있습니다. 반할 수 밖에 없지요. 그 어느 장르에서도 어쩜 그리 뻔뻔하게 42라고 말할 수 있겠어요? 어쨌든 그런 기대감에 부풀어 읽은 것이 이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이지만, 음...아쉽습니다 ㅠ_ㅠ

 물론 SF적 상상력의 틀이 제 취향에 고스란히 들어맞아야 한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만. 이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의 단편들은 대부분 상상력의 기발함이나 위트있는 역설보다는 과학적, 환상적 소재 쪽에만 치우쳐 있는 것 같습니다. 더욱이 '10대를 위한 SF단편집'이라는 멋진 부제가 '발칙함', '젊음'보다는 '건전함', '모범'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해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특히나 외계와의 만남이라는 테마가 단편집 하나에서 보기엔 꽤 많은 수가 들어가 있는데, 여기서 이 테마가 어떤 변주보다는 한국 청소년들의 꽉 막힌 일상의 근원지-해방구로 작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은 불만입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는 발랄한 센스의 제목에도 불구하고 '외계인들의 침략음모로, 아이들이 (수능 잘 치게)개조 당한다' 정도의 큰 틀을 벗어나지 못하며 정치적으로 올바르려 노력하는 한계가 드러납니다.

 그래도 [스마트 D]로 제 하트를 사로잡았던(...) 배명훈 작가님의 [엄마의 설명력]은 음모론과 학문의 자유, 입양아와 같은 자칫 진중해 질 수 있는 주제를 쉬운 구어체와 익숙한 솜씨의 농담, 과학적 뻥으로 편하게 버무려 놓는 솜씨가 참으로 맛깔납니다. [스마트 D]처럼 하나의 충격 정도는 아니더라도 읽는 내내 미소가 떠나지 않는 수작이며 단편 하나로 책 한권 값을 합니다. 앞으로 이런 유쾌한 SF가 한국에서-그리고 또 우리 젊은 청춘을 위한 SF가 더욱 많이 등장하길 빕니다 :)


덧//
그러니까 누가 [2014 뽁뽁이 대량학살사건에 대한 보고서] 좀 책으로 내달라능
에 뭐 이 놈이야말로 매너리즘(+허영, 거품, 망상)으로 가득 찬 녀석이지요(...)

덧2//
투정 잔뜩 부렸지만 역시 SF는 즐겁습니다 ㅠ_ㅠ

by dcdc | 2008/04/08 02:28 | 내가 사랑한 B급-도서 | 트랙백 | 덧글(5)

[W-FACE 우든 페이스] 실존에 대한 SF적 질의응답.

 

 근미래, 거대기업이 밀집되어 있는 다국적 도시 '가랜드'. 기업간 정보탈취가 치열한 이 도시는 일자리와 복리후생을 손에 넣기 위한 싸움으로 가득하다. 순수 일본인으로 종신고용이 보장되어있는 샐러리맨 아즈마 이데다츠. 어느 날 그는 경쟁기업의 신상품이 든 가방을 훔치는 일에 성공하나 그 가방 안에는 신상품이 아닌 한 소녀가?! 닌자 샐러리맨 아즈마와 소녀의 몸을 가진 생명유지장치 레피오의 일상을 그린 SF 수작.-책 뒤표지에서 수정.

 [우든 페이스]는 깔끔하게, 그리고 정중하게 삶에 대해 질문하는 SF만화입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골머리 아프다기보다는 에피소드 하나 하나에 소소히 녹아들어가 있으며, 그 나름의 답 역시 스쳐지나가듯 제시됩니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선, 삶의 목적과 과정, 기억과 인격 그리고 안드로이드. 다양한 SF 작품들에서 나왔던 물음들이 깊이만이 아닌 담백함을 가지고 진행된다는 것이 이 작품의 매력입니다.

 인간이 아닌 존재를 중심으로 실존적인 문제를 그리는 작품들은 다앙합니다. 이 작품처럼 안드로이드-사실 안드로이드로 휙하고 끝내기는 범주가 너무 많지만-인 경우나 흡혈귀, 뱀파이어같은 소재에서 흔히 나오고 어떤 경우는 고양이일 때마저도 있지요. 이는 분명 보다 객관적인 시점에서 우화처럼 상징의 극명한 대답을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임무도 없는데 어떻게 살아가라는 말이야?'라는 레피오의 물음은 다름 아닌 우리 스스로를 겨냥합니다.

 실존의 범주에서 목적, 방향까지 단 2권이라는 짧은 분량 안에서 이 SF활극은 꽉 찬 질문을 연달아 던집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쓸데없는 음모론이나 학살과는 무관하게, 유쾌한 활극과 인물들의 '살아가는 모습' 하나하나에 담겨있을 뿐입니다. 황량한 미래도시에 보기만 해도 기특한 주인공들의 일상. 여기에는 정적이면서도 쭉쭉 뻗는 액션장면도, 실존적 이야기도 모두 들어있답니다 :)


덧//
블로그 시작했을 때 부터 올리고 싶었던 소재인데, 너무 대충 썼다 ㅠ_ㅠ_ㅠ_ㅠ 제가 베스트에 꼽는 만화랍니다 :) 중학교 때였나 고등학교 때였나 한눈에 반해버렸었지요. 그림체는 이트맨을 약간 닮은 것 같기도 한데 더 깔끔하고 정돈된 배경이에요.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은 도무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군요 OTL 일어 공부나 해야지 OTL

덧2//
구하기 힘든 작품이라 글을 쓸까 말까 고민했는데 방학특선으로(...)

by dcdc | 2008/02/16 01:49 | 내가 사랑한 B급-만화 | 트랙백 | 덧글(4)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